이제 입추도 지나고, 말복도 지났습니다.
지금은 처서를 기다리고 있어요.
이 뜨거운 여름 속에서도
가을은 이미 시작되고 있는지 모릅니다.
어제 저녁에는 잠이 안와서
낮에 읽다 덮어둔 소설책을 펴들었어요.
시간은 자정이 훨씬 넘어 있었고
창은 모두 열어놓은 상태였죠.
한 두줄 읽었을까, 순간
호르륵, 호르르륵 하는 소리가 제 귀를 간지럽히더군요.
처음엔 무슨 소린지 몰랐는데
귀기울여 생각해보니, 귀뚜라미 소리였어요.
물론 어두워서 보이진 않았지만
그 소리만은 생생히 제 가슴속에 울려퍼졌습니다.
창가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며 한동안 그렇게
귀뚜라미 음악회를 감상했어요.
벌써 가을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일까,
귀뚜라미 소리가 마치 가을을 부르는 마법의 주문 같았어요.
자연스럽게 저는 그 마법에 걸렸고,
하루동안 쌓인 피로가 다 사라지는 기분이었습니다.
귀기울여 보세요.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지 않나요?
-2004.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