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커피 한잔

시월의숲 2005. 3. 20. 14:44

오늘이 벌써 입동이군요.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시간은 한치의 틈도 보이지 않고 돌진하는 잔인한 병사와도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 냉철함과 차가움은 곧 다가올 겨울이란 계절과도 닮아있는 것 같아요.

커피를 그리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오늘은 왠일인지 커피가 무척이나 마시고 싶더군요. 그래서 주전자에 물을 올려놓고 컵에는 인스턴트 커피와 프림, 설탕을 넣었습니다. 그리고는 물이 끓기를 기다렸죠. 물이 끓기를 기다리는 그 짧은 순간에, 문득 이런것이 행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짧은 기다림, 그 속에 들어있는 행복. 아니면, 그렇게 믿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커피를 마시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했는데,
가을이란 계절은 커피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했어요. 가을 낙엽의 색깔과 특유의 쓸쓸한 분위기, 그 중독성까지. 문득 아주 예전에 읽었던 수필이 생각나더군요. 낙엽 태울때 나는 연기의 냄새가 마치 진한 커피 향과도 같다고 했던.

커피향처럼 한 순간 머물렀던 가을이 이제 가려고 합니다.
겨울이 되면 저 나무처럼 강해질 수 있을까, 아님 식은 커피처럼 초라해질 것인가 생각해 봅니다. 누가 마시다 남긴 맛없는, 식어버린 커피가 되어서는 안될텐데 말입니다.

날씨가 점차 차가워집니다. 늘 건강하시길.

 

 

-2004.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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