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 정희성
숲에 가보니 나무들은
제가끔 서 있더군
제가끔 서 있어도 나무들은
숲이었어
광화문 지하도를 지나며
숱한 사람들이 만나지만
왜 그들은 숲이 아닌가
이 메마른 땅을 외롭게 지나치며
낯선 그대와 만날 때
그대와 나는 왜
숲이 아닌가
- 시집 <저문 강에 삽을 씻고> 중에서
* * *
나무들는 모여서 숲을 이루지만,
사람들은 모여서 무엇을 이루는가
사람이나, 나무나
하나의 생명을 가진 존재인데,
자신의 그늘을 가진 존재인데,
무엇이 사람들을 숲에서 멀어지게 하였나
하얗게 말라버린 혈관같은 거리, 그 위로
알약처럼 쏟아지는 창백한 얼굴들,
굳게 다문 입술을 지나치며
나는 오늘도 생각에 잠긴다
그대와 나는 왜
숲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