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만한지나침

배수아, <이바나> 중에서

시월의숲 2005. 8. 10. 13:20

사랑에 대해서, 우리는 고의적으로 말하기를 피한다.

그것은 수치나 허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침묵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사랑이 시작될 때 우리는 침묵에 복종한다. 그것은 강요당한 상태이다. 우리는 '저항할 수 없는 영혼'이라는 표현의 의미를 이해하게 된다. 격정에 빠진 연인은 스스로 추방되기를 원한다. 사회나 제도, 결혼에 등을 돌린다.

그리하여 우리는 은밀한 방으로 들어간다. 거기서 문을 잠근다. 거기 머문다.

 

사랑이 우리 곁을 완전히 떠날 때, 우리는 목욕탕에서 스스로 머리칼을 자른다. 머리칼이 없다면 팔이나 혀를 자르거나 눈을 잃게 된다. 고통에 대하여, 육체란 영혼의 언어이다. 영혼은 육체를 빌려 말한다.

 

사랑이여, 베어나간 내 살이여.

자신의 일부가 베여나가지만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 단지 섬뜩함만이, 아주 오랜 시간이 자나서야 비로소 그 정체를 알 수 있게 될 그런 섬뜩함만이 피부에 남아 있다.

 

사랑이 치명적인 것은 바로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 이상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너무나 충분하다.

 

우리가 늙고 죽음을 목전에 두어 더 이상 사랑에 대하여 아무런 희망이나 가능성도 꿈꾸지 않을 때, 더 이상 사랑이라는 말에서 그 어떠한 상처도 기억하지 않게 될 때, 그런 때에야 우리는 그것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자유를 얻게 될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침묵.

 

 

*

 

 

중학생이란, 몸에 잘 맞지 않는 교복을 입고 헐렁한 구두를 신고 어수선하고 불안한 낯빛으로 시간의 어떤 통로에서 서성이는 난장이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