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바닷가에서

시월의숲 2005. 11. 1. 15:17

바다를 보고 왔다.

 

한 친구녀석이 문득 바다에 가지 않겠냐고

장난스레 한 말이 발단이 되어

나와 세명의 친구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가자! 라고 탄성을 지르며

바다를 향했다.

 

바다를 보러가는 길은 생각보다 멀었다.

수업이 걱정되기도 했지만

이번 기회를 놓치면 언제 바다를 보게 될지 모르겠기에

선뜻 가게 된 것이다.
아니, 어쩌면
바다,라는 말이 나온 순간부터

내 마음은 이미 바다에 가 있었는지도 몰랐다.

 

한 시간 반 가량 걸려서 도착한 영덕의 대진해수욕장.

해변가의 거의 모든 집 앞에 오징어가 널려 있었고

밀려드는 바닷바람과 특유의 소금기 배인 비린내가 코를 자극했다.

정말 내가 바닷가에 와 있다니. 바다는 늘 거기 있었는데.

 

아, 얼마만에 보는 바다인가!

 

실로 오랜만에 본 바다라 그런지 무척 낯설게 느껴졌다.

인적이 끊긴 해수욕장의 쓸쓸함 때문인가.

그 낯설음이 익숙해지도록

한참을 모래 위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았다.

끝간데 없이 펼쳐진 바다와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

삼킬듯 달려드는 파도에 순간 두려움이 일었다.

그 두려움은 나를 한없이 작아지게 만들었다.

 

바닷물을 만져보려고 바다쪽으로 조금씩 나가다가

갑자기 밀려드는 파도에 발이 축축히 젖었다.

그 차가움이라니!

신발이 다 젖고 발이 시려왔음에도 불구하고 기분이 나쁘기는 커녕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

지금 내 발을 적신 이 차가움이 오래도록 내 안에 남아서

나태하고 나약한 내 정신을 일깨워주기를

마음 속으로 빌었다.

 

바닷가에 와서도 이기적인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갈매기들이 끼룩끼룩 머리위를 날아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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