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형도의 시를 읽다가 우연히
'시월의 숲'이라는 구절을 발견했다.
문장이라하기에는 너무나 짧고
단어라 하기에는 조금 긴 그 말이
왜 그렇게 내 시선을 잡아 끈 것인지
시집을 처음 읽는 것도 아닌데
왜 예전에는 그 구절이 눈에 띄지 않았는지
그것은 정말 신기하고도 놀라운 경험이었다.
시,
월,
의,
숲...
천천히 그리고 낮게 발음하자
입안에서 서늘한 바람이 불어와 마침내 내 온몸을 감싸안는다.
내 두 눈은 마법에 걸린 듯 스르르 감기고
두 다리는 어디론가를 향해 걸어 들어간다.
무언가 괴상하지만 쓸쓸한 분위기의 생물들이
해독할 수 없는 노래를 부르고
방향을 알 수 없는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며
일년내내 낙엽이 지는 투명한 갈색의 숲으로
서걱서걱 걸어 들어간다.
서늘하고,
쓸쓸하며,
슬프고,
비밀스런
시월의 숲으로
내가 태어나고 떠나온,
모든 것이 시작되고 끝나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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