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시월의 숲

시월의숲 2006. 9. 25. 21:23

기형도의 시를 읽다가 우연히

'시월의 숲'이라는 구절을 발견했다.

문장이라하기에는 너무나 짧고

단어라 하기에는 조금 긴 그 말이

왜 그렇게 내 시선을 잡아 끈 것인지

시집을 처음 읽는 것도 아닌데

왜 예전에는 그 구절이 눈에 띄지 않았는지

그것은 정말 신기하고도 놀라운 경험이었다.

 

시,

 

월,

 

의,

 

숲...

 

천천히 그리고 낮게 발음하자

입안에서 서늘한 바람이 불어와 마침내 내 온몸을 감싸안는다.

내 두 눈은 마법에 걸린 듯 스르르 감기고 

두 다리는 어디론가를 향해 걸어 들어간다.

무언가 괴상하지만 쓸쓸한 분위기의 생물들이

해독할 수 없는 노래를 부르고

방향을 알 수 없는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며

일년내내 낙엽이 지는 투명한 갈색의 숲으로

서걱서걱 걸어 들어간다.

서늘하고,

쓸쓸하며,

슬프고,

비밀스런 

시월의 숲으로

 

 

내가 태어나고 떠나온,

모든 것이 시작되고 끝나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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