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의 비명(碑銘)
- 청년화가 L을 위하여
함형수
나의 무덤 앞에는 그 차가운 빗(碑)돌은 세우지 말라.
나의 무덤 주위에는 그 노오란 해바라기를 심어달라.
그리고 해바라기의 긴 줄거리 사이로 끝없는 보리밭을 보여 달라.
노오란 해바라기는 늘 태양같이 하던 화려한 나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라.
푸른 보리밭 사이로 하늘을 쏘는 노고지리가 있거든 아직도 날아오르는 나의 꿈이라고 생각하라.
- 출전 <시인부락> 창간호 (1936)
* * *
처음 이 시를 읽고 아, 하는 탄성이 새어나왔다.
태양을 닮아 눈부시게 노란 해바라기가
내 가슴에 비명처럼 새겨지는 느낌이었다.
나도 저 해바라기의 비명(碑銘) 처럼,
그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겠지.
지금은 보잘 것 없지만,
누구도 알아보지 못할 지라도
언제나 태양을 동경하여 스스로 태양이 되어버린 해바라기처럼 그렇게
그렇게 살고 싶다.
아니, 그렇게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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