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눈부시게 햇살에 비추던 날, 고모와 고모부, 아버지, 동생 그리고 나, 이렇게 다섯 명이서 문경 찻사발 축제를 다녀왔다. 올해로 몇 해 째를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매년 열렸다고 하는 찻사발 축제를, 나는 어제 처음 들어 보았다. 그것도 멀리 춘천에 살고 있는 고모에게서 말이다. 문경이라면 내가 있는 곳에서 자가용으로 불과 삼, 사십분 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인데도 거기서 무엇이 열리고 있는지 이리도 무심했다니. 내 무관심을 탓하며, 또 무척 설레는 마음으로 축제 현장으로 향했다.
축제는 문경새재 올라가는 입구에 있는 도자기전시관 일대에서 열렸다. 생각보다 그렇게 사람이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서 관람하기는 더 편했던 것 같다. 여러 작가들이 내 놓은 찻사발들을 구경했는데, 처음 놀란 것은 찻사발들이 모두 비슷하다는 것이었고, 다음으로 놀란 것은 가격이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이었다. 작은(아버지의 표현대로라면 소주잔만한) 찻잔이 하나에 5만원이 넘었고 다기 세트는 무려 150만원이 넘는 것도 있었다! 그것도 하나의 예술품으로 볼 수 있는데 그런 작품들에 가격을 매긴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우스운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너무나 비싼 가격이 매겨져 있는 것을 보고, 나 뿐만 아니라 구경 온 다른 사람들도 살 엄두를 내지 않는 것 같았다. 오히려 가격이 저렴한 기념품 가게에 사람들이 훨씬 더 북적거렸으니.
전시되어 있는 찻사발을 구경하는 것 외에 도자기에 그림 그리는 것이랄지, 도자기 만들기 체험, 곤충 구경, 솟대 구경 등 많은 것들이 있어서 이것 저것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도자기 전시관에 들어가서 도자기로 만든 물고기 모양의 작은 휴대폰 걸이도 하나 샀고(가격이 제일 쌌다..ㅜㅠ) .
생각해보면 모든 예술이 일반인들과는 멀리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그 예술품들의 진가를 몰라서 하는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있어서 예술품은 사치품이라는 인상이 더 강한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일단 값이 너무나도 비싸니, 하루하루 사는데 쫓기는 서민들(나를 포함한)은 그런 여유를 부릴 틈이 없는 것이다. 아마도 많은 예술가들이나 사상가들이 그런 생각을 했겠지. 하지만, 그 도자기들을 직접 사지는 못할지라도 이렇게 구경 올 수는 있을 것이다. 꼭 그것을 소유해야만 자신이 예술적이 되는 것은 아닐테니까. 그것을 많이 보고, 배우고, 느낀다면 그것으로 된 것이 아닌가? 뭐, 물론 예술가들에게는 좀 가혹한 말이 되겠지만. 예술을 사치로 느낀다는 것은 좀 슬픈 일이긴 하다.
어쨌거나 날씨도 좋고, 고모가 있어 좋고, 축제가 있어 좋은 그런 날이었다. 이런 날을 아름다운 날들의 풍경이라고 해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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