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동생과 동생 친구와 함께 연극을 보러갔다. 제목은 <크리스토퍼 빈의 죽음>. 극단 '명장'에서 하는 무료공연이다. 연극은 이번으로 두 번째 보는 것이었는데, 처음 본 연극은 대학시절(벌써 '시절'이라고 해야하다니!) 학교 극단 '토담'에서 하는 <라이어 라이어>라는 공연이었다. 아직은 학생인 아마추어 연기자들의 연기가 약간은 미숙한 듯 보였지만 그래도 생애 처음으로 본 연극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연극이라는 것이 가진 원래의 힘 때문인지, 아직도 내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고 있다. 그래서 어제 동생이 갑작스레 연극을 보러가자고 했을 때 마음 속에서 출렁, 하는 설렘이 느껴졌다.
이번에 본 연극은 전문적인 극단에서 한 공연이라서 그런지 배우들의 연기가 훨씬 안정되고 세련되 보였다. 물론 내용도 좋았고. 뭐, 많이 공연된 작품이라니까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그래도 줄거리를 대강 소개하자면 이렇다. 10여년 전에 해캣트라는 시골의사의 환자였지만 지금은 죽고 없는, 화가 크리스토퍼 빈의 작품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람들 사이의 해프닝을 그리고 있다. 그때는 무명이었던 크리스토퍼의 작품이 현재는 어마어마한 가치를 지닌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었으니, 그때의 작품들을 사려고 벌어지는 인간들의 탐욕이야 오죽했을까. 이 작품은 그런 인간들의 음흉하고 비열한 내면을, 코믹한 터치로 들여다본다. 이런 걸 블랙코미디라고 하던가? 뭐, 어쨌든.
재미있었다. 중간중간 웃음이 나오는 장면들도 많았고 마지막에는 약간의 뭉클함까지 느꼈으니.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각색한 시드니 하워드라는 작가가 쓴 작품이라고 하던데, 보고나서 이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보고 싶어졌다. 그럴 기회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다 좋았는데,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관객들이었다. 어린이 날이니만큼 아이들이 많이 오겠거니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어린 아이들의 꼼지락 거림과 소근거림, 지속적으로 들려오는 누군가의 기침소리, 의자의 삐걱거림과 핸드폰의 울림(!)까지! 그런 것들이 내 신경을 자극하고 극의 흐름마저 툭툭 끊어 놓은 것 같아서 정말 화가 치밀었다. 원래 연극을 보면 그런 것쯤은 감수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곳에 온 관객들의 수준이 떨어지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동생에게 물어보니 오히려, "언제 그런 소리가 났었나? 난 몰입해서 봤는데."라고 하니 할말이 없었다. 내가 너무 예민한 탓인가? 아님 실내가 너무 더워서 짜증이 좀 난던 걸까. 좀 더 완전한 침묵 속에서 배우들의 숨소리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느끼려는 내 강박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새삼 느낀 것은 배우란 직업은 참 매력적이라는 것. 그들의 고충이야 내가 어찌 감히 알 수 있으랴마는, 무대 위에서 온 몸으로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영화와 드라마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생동감이 피부로 스며들어, 그들 하나하나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래, 그것 때문에 사람들은 연극을 보는 것이리라. 그것은 참으로 아름답고도 설레는 순간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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