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개봉한 영화 <검은집>의 원작이다. 영화의 예고편을 보고서 대충 어떤 내용일 것이라 예상했었는데, 소설은 무척 재미있었다. 공포스러운 내용을 재밌다고 표현하는 것이 약간 이상하긴 하지만, 어쨌거나 보험 때문에 친 자식을 아무렇지 않게 죽이는 사이코패스의 묘사가 무척이나 섬뜩하고 상당히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사실, 세상에는 기상천외한 살인사건들이 많이 일어나지 않은가. 소설 속에서나 일어날 법한 사건들이 버젓이 신문의 사회면을 장식하는 것을 보면 현실이 소설이나 영화보다 더욱 살벌하다는 생각이 들곤 하니까. 특히 그 사건의 이면에 돈이라는 것이 개입되어 있을 때는 더욱 더. 보험이라면 오죽이나 할까.
일상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공포소설이나 영화의 소재로 적합한, 보험과 관련된 살인에 관한 소설인 <검은집>은 굉장히 흡입력 있었다. 그리 짧지 않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무척이나 빨리 읽혔던 것이다. 마음이 없는 인간인 사이코패스와 그에 맞서는 보험회사 직원. 소설은 극단적 인간의 극단적 행위들을 그로테스크하게 그리고 있지만 결국 그러한 사이코패스들을 양상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아닐까 하는 물음을 던지고 있다. 뭐, 지극히 당연한 물음일지도 모른다. 결국 범죄란 선천적인 성향이 있다고 하더라도 환경의 영향이 클테니까.
눈을 감고 생각해 본다. 정말 마음이 없는 인간들이 판을 치는 사회라면 세상은 얼마나 끔찍할까. 살인을 하고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인간들이 판을 친다면... 소설 속 사이코패스는 자신이 저지른 살인의 대상이 친자식이라도 게의치 않는다. 그들에게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것은 먼 타인에게만 해당되는 말은 아닐지도 모른다. 오로지 돈만 숭배하는 세상이 된다면(지금이 그런 세상일지도 모르지만) 내가 그러한 사이코패스가 되지 말란 법이 없지 않은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사회가 그러한 사람들을 양상한다면, 내가 계속 이 사회에서 살아가야하는 한 말이다. 물론 이건 극단적인 생각이다. 하지만 신문의 사건 사고면을 볼 때면 꼭 그렇지 만도 않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끔찍한 상상이 아닐 수 없다.
아, 이젠 영화를 볼 일만 남았다. 극장 상영은 벌써 끝났으니 비디오가 나오길 기다리는 수 밖에 없구나. 황정민이라는 믿음직한 배우가 나오니까 영화도 무척 기대된다. 검은 집의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잘 살렸는지, 모든 악몽의 근원인 사치코 역의 유선은 어떨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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