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독서

라이너 마리아 릴케, 『말테의 수기』를 읽고

시월의숲 2007. 8. 12. 14:40

사실 이 소설을 읽고 감상문을 써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하고 싶은 말이 있긴 한데, 그게 무엇인지 잘 모르겠는 느낌이랄까. 그런 모순적인 감정 때문에 글 쓰는 것을 망설였으나 순간 그게 뭐 어때서?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느낀 대로 쓰면 되는거지 괜히 멋드러지게 글을 쓸 필요는 없으니까. 멋있게 글 쓸 자신도 없고, 멋있게 글을 쓰고 싶지도 않지만. 아니다, 아니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게 아니다. 표현. 그래, 라이너 마리아 릴케(아, 이름이 이렇듯 서정적일 수 있다니!)의 <말테의 수기>를 읽고 나서 떠오른 생각들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망설였던 것이다. 생각 혹은 감상, 상상의 덩어리를 어떻게 하면 언어로서 표현할 수 있을까. 그 보이지 않는 무형의 덩어리를!

 

<말테의 수기>는 이상한 힘을 가진 소설이었다. 일단 소설이라 하기엔 너무나 자전적인 경향이 짙었고(이건 읽는데 별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그래서 조금은 쉽게 읽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으나 몇 페이지도 못 읽고 그 기대는 가차없이 무너져버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소설은 끝까지 읽게 만드는 무언가가 분명 있었다. 그것은 줄거리(라고 할 것이 있었던가!)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었고 어떤 명징한 주제가 있어 그것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었으며 작가의 독단적인 사상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다만 단어와 단어가 어울려 이루어진 문장, 그 문장이 모여서 이루어진 문단의 행과 행 사이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그것은 치열함이란 단어에서 풍기는 일상적인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치열함이랄까. 일상적인 사물과 그것들의 관계가 작가의 머릿속에 들어갔다 나오면서 색다르게 각색된 듯한 느낌? 그것은 부드러우면서도 독특한 질감이 있는 누비옷을 입은 듯한 느낌이었다. 또한 그것은 우아하면서도 지적인 분위기가 풍기는, 하지만 정체모를 불안과 고독에 휩싸인 미인을 보고 있는 것과도 비슷했다. 아... 이런 말들은 얼마나 상투적이고 상상력이 결여된 석고상 같은가. 훅 불면 날아가버릴 재처럼 가벼운!

 

밑줄 긋고 싶어지는 부분도 많았지만 어려운 부분도 많았다. 특히 그리스 시대의 작가들을 언급한 부분과 역사적인 사건과 성서를 해석한 부분들은 그다지 깊이 와닿지 않았다. 하지만 죽음에 대한 고찰과 젊은 시인에게 하는 당부의 말, 불안한 파리 시내의 묘사와 병원에서의 풍경과 사람들의 심리묘사 등은 그냥 좋았다. 혹자는 원문도 아니고 번역된 책을 읽었으면서 뭐 그리 문장이 어떻고 하면서 호들갑을 떠느냐고 비웃을 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좋은걸 어떻게? 어쩌면 그것은 나도 한 번 그러한 사변적이고도 멋드러지 글을 써보고 싶은 욕망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 왜 좋은지 그 이유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떠들지 말자. 어쨌거나 릴케의 소설은 나를 얼마간 매료시켰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니까. 또한 우리들 모두는 얼마간 불안하고 고독한 존재들이니까. 말테 혹은 릴케처럼! 시간이 흐른 후에 다시 한 번 이 소설을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말테의 수기>는 그렇게 내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