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독서

레이먼드 챈들러, 『기나긴 이별』을 읽고

시월의숲 2007. 8. 19. 18:34

기나긴 이별... 처음 이 제목을 보았을 때, 추리소설의 제목으로는 참으로 서정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추리소설이라고 해서 특별히 정해진 유형의 제목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제목은 어딘지 모르게 추리소설이라는 장르와는 어울리지 않는듯 했다. 급박하게 전개되어야 하는 추리소설 고유의 매력이 약한 것은 아닌가 생각되어 선뜻 선택하기가 망설여졌다. 하지만 무라카미 하루키가 자신의 영웅이라고까지 했던 레이먼드 챈들러이니만큼 무언가 다른 것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600백 쪽이 넘는 분량이지만 사실 줄거리는 간단하다. 살인사건을 풀어가는 탐정의 이야기. 이게 모든 추리소설에 해당되는 특징인지는 모르나, 어쨌거나 이 소설의 줄거리는, 필립 말로라고 하는 사립탐정이 어느날 우연히 만나게 된 테리 레녹스라는 남자와 얽힌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필립 말로는 술을 마셔서 인사불성이 된 테리 레녹스를 집으로 데려다 주게되고, 며칠 뒤에 자신의 아내가 죽었으며 자신은 멕시코로 도주해야 겠다는 그를 또 한번 도와주게 된다. 그 후, 그와 관련된 여러 사람들과 얽히고 설키게 되며 돈과 치정, 살인, 부패, 비리, 깡패 등이 판치는 비열한 거리를 배회하며 진실을 밝히게 되는 이야기다.

 

앞에서 제목 이야기를 했는데, 제목에서 풍기는 서정적인 울림이 책을 다 읽고 난 후의 여운과 비슷했다. 그 여운은 단순한 추리 소설을 읽고 났을 때의 느낌과는 좀 달랐다. 생각건대 그것은  필립 말로 라는 탐정이 가진 직관과 서정적, 혹은 철학적이기까지 한 생각과 태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견 냉소적이고 비꼬는 듯 보이지만 늘 정곡을 찌르는 그의 통쾌한 언변을 포함하여,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그의 친절과 고집스러운 신념, 뭐 그런 것들에서 품어져 나오는 것이 여타 추리소설과는 달랐다.

 

하드보일드 문학의 대가라고 하는 레이먼드 챈들러. 아직 그 수식어가 의미하는 것을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한다. 어쩌면 내가 이 소설을 읽고, 책의 앞 뒷면에 적힌 해석을 깊이 이해하지 못한 것도 처음부터 내가 추리소설이라는 장르의 얄팍한 쾌락만을 기대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것은 얕은 물인 줄 알고 발을 담궜는데 의외로 깊은 물이었던 것이다!

 

고작 한 권을 읽고 그의 전반적인 문학세계가 어떻고, 그가 창조한 인물이 어떻고, 하드보일드가 어떻고 하는 말을 늘어놓는 것은 어불성설일 것이다.좋은 책일 수록 여러번 읽을 때마다 새롭게 다가오는 것이므로. 고로 지금의 내 감상문은 이렇듯 빈약하다. 나는 미래에 다시 한번 이 책을 읽을 것인가? 만약 읽는다면 레이먼드 챈들러를 수식하는 찬란한 말들을 내가 온전히 느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