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이다. 그리고 가을이다. 오늘 낮에 30분 정도 산책을 했는데, 아직은 따가운 햇살에 채 가시지 않은 여름의 끈질긴 기운을 느꼈다. 긴팔옷을 입고 있어서 였을까? 그래도 누럿누럿 변한 들판과 떨어지는 낙엽들, 어지럽게 날아다니는 잠자리들, 바람에 따라 이리저리 춤을 추는 코스모스 등이 이제는 정말 가을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레몽 장의 <책 읽어주는 여자>를 읽고 있다. 93년도에 나온 소설인데 책 값이 삼천원이다. 글씨체도 작고 종이도 누렇게 변색되어 있다. 십 년도 넘은 책이니 그럴 만도 하다. 90년대라는 말이 과거가 되어버린 지금, 그 시절을 생각하면 내 나이가 무척 많은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예전엔 90년대라고 하면 항상 현재형으로만 생각했는데 이젠 그렇지 않다. 그렇지 않음을 순간순간 느낀다. 지금 내 앞에 놓여있는 93년도판 <책 읽어주는 여자>가 그렇듯이.
예전에 가을을 왜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는지에 대해 들은 기억이 있다. 그 이유가 내 생각과는 달리 사람들이 가을에 책을 가장 읽지 않아서라고 했던가. 그래서 가을에 책 좀 읽으라고.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다른 계절보다 유독 가을에 책을 읽지 않는 것일까. 어떤 이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로부터 농사를 짓고 살았기 때문에 가을이면 추수다 뭐다 하여 바쁘기 때문이라고 하고, 또 어떤 이는 가을에 놀러 다니기가 가장 좋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뭐, 둘 다 일리 있는 말이겠지만 내 경우를 생각해보면 그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나는 농사를 짓지 않으니 농번기라고 특별히 바쁠 이유가 없고, 그렇다고 어디 여행을 간다거나 친구들과 어울려 놀러 다니지도 않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엔 책이 잘 읽히지 않는다. 이상한 일이다. 지금 읽고 있는 <책 읽어주는 여자>도 비교적 짧은 분량의 책임에도 불구하고 읽는 속도가 예전에 비해 눈에 띄게 더뎌졌다. 왜 일까?
아마도 그건 가을이라는 계절의 속성 때문이 아닐까? 창을 열면 시원한 바람이 옷깃 사이로 스며들어 몸을 간질이고, 하늘은 높고 푸르며, 코스모스는 춤을 추고... 무언가 술렁이는 듯한, 어디선가 나를 부르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따스해지는 봄과 달리 따스함을 찾게되고 뜨거운 커피가 더이상 어색하지 않으며 저마다 생각이 조금씩 많아지고 깊어지는... 그러니 어찌 책에 집중할 수 있단 말인가! 이런 날씨에 책만 읽는 다는 것은 가을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않은가!
물론 가을은 책 읽기에도 좋은 계절이다. 그러니 이렇게 말해야 할 것이다. 가을은 무슨 일을 하든지 다 좋은 계절이라고. 허나 이 좋은 계절에 나는 책에 집중하지 못하고, 놀러 다니지도 않고 도대체 무얼하고 있는 것인가. 마냥 흐지부지 되어버리게 만드는 내 성격이 싫다. 아무래도 이번 주말엔 안동 탈춤 페스티벌이라도 갔다 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