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다. 무엇이 문제인가.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는 것이 문제인가? 아니면 무엇이 문제인지 알면서도 고치지 못하는 것이 문제인가. 문제가 있다면 누구에게 있는가? 나에게? 너에게? 우리 모두에게?
문제는, 무엇이 문제이고 누구에게 문제가 있는지 알면서도 고치려 들지 않는 데에 있다. 실로 심각한 문제라 아니할 수 없다. 이해하려고 들면 이해 못할 것이 없고, 이해하지 않으려 들면 이해 할 것이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진 이 무수한 골칫덩어리들은 결국 이해의 문제인가? 그렇다. 모든 것이 그렇다. 이해하는 것.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 배려하는 것. 들어주는 것.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진정 그러한 것들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배려하지 못하며, 상대방의 말을 들어주지 않고, 헤아려 주려 하지 않게 하는가? 상대방의 이해만을, 배려만을 바라기 때문이다. 들어보면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렇게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상대방의 더 큰 이해를 바라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더 크게 잘못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며, 내 잘못은 눈 딱 감아버리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그렇다. 이것이 우리가 상대방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네가 도대체 나에게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냐. 그럴 수가 있다. 너도 그럴 수 있고, 나도 그럴 수 있다. 다만 '네'가 그렇다는 것을 '내'가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일 뿐이다. 거기서부터 비극은 시작된다. 그것은 상대방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면, 있는 그대로 바라보라. 그저 그런 사람도 있다고, 그렇게 체념해보라. 그것이 그 사람에 대한 얼마간의 포기일지라도 우리에겐 그러한 마음가짐이 절실히 필요하다. 누가 누구를 변화시킬 수 있겠는가. 결국 인간은 자신의 사고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할 뿐이다. 우리는 누구도 상대방의 생각 하나하나를 바꾸지 못한다.
저기, 멀리서 누군가 외치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다. 사랑, 이라는 것이 있지 않느냐고. 모든 마음의 상처, 그 사랑이라는 것이 치유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말을 하는 당신은 지금 사랑에 빠져 있는 사람이 아닌가? 사랑은 진정으로 인간 관계를 치유하지 못한다. 그것은 환상이다. 환상 속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는 모든 사물이 아름답게만 보이는 법이다. 너와 내가 만나 사랑을 하여 산 사람들을 보라. 사랑의 유효기간은 너무나도 짧다. 그것은 순간의 마술이다. 일시적 착시현상, 혹은 중독현상일 뿐이다.
남녀간의 사랑에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부모 자식간의 사랑, 형제간의 사랑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남녀간의 사랑보다 가족간의 사랑이 한 번 깨어지면 돌이킬 수 없게 되어 버린다.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라는 것이 남보다 못해지는 것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라 아니할 수 없다.
무엇이 문제인가. 인간들 사이의 문제라는 것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그것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가? 다시, 앞에서 했던 이야기로 이 지루한 글의 끝을 맺을까 한다. 우리에겐 인간에 대한 약간의 체념이 필요하다. 그 사람을 내 식대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굳이 상대방의 변화시켜야 하나? 무엇 때문에? 말이 통하지 않으면 통할 수 있게 서로 노력은 해야 할 것이다. 그것마저 하지 않고 체념한다면 그것은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마저도 버리는 일이 될 것이므로. 그래도 안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가?
바라보고 또 바라보라.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은 채. 완벽한 이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해란 오해의 다른 이름이라는 말도 있지 않는가. 상대방에게 바라는 것이 많지 않다면 당연히 충돌하는 일도 적을 것이다. 냉소적인 평화. 나는 차라리 그것을 원한다. 나는 인간들에게 많은 것을 바라지 않을 것이며 그들도 그러하길 바란다. 냉소와 무심함으로 무장한 채 나는 걸아나갈 것이다. 물론 이런 내 생각으로는 상대방과 깊은 관계를 맺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깊이 상처받을 일 또한 없을 것이다. 나는 그것으로 만족한다. 당신들도 부디 그러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