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독서

이정우, 『탐독』, 아고라, 2006.

시월의숲 2008. 2. 5. 18:05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쓰련다. 이정우의 <탐독>을 읽고 난 후의 부끄러움에 대해서, 또 부러움에 대해서.

 

<유목적 사유의 탄생>이라는 부제가 붙은 <탐독>은 한마디로 책에 관한 책이다. 철학자(라고 부르는 것이 맞을까?) 이정우가 이제껏 읽어온 책들에 관해서 비교적 쉽게(자신의 말로는) 풀어서 써놓은, 하지만 마냥 독후감이라고 하기에는 그 깊이가 깊고 방대한 책이다. 그가 어째서 인문학, 사회학, 공학, 수학, 문학, 철학 등의 학문들에 고루 밝게 되었는지, 어째서 ‘가로지르기’ 같은 개념의 사고를 하게 되었는지, 이 책에 풀어놓은 그의 다양한 탐독의 흔적을 읽으면서 이해하게 되었다.

 

그는 그것을 유목적 사유라고 불렀다. 하나의 학문을 파다보면 벌어지게 되는 우물 안 개구리 같은, 편협한 사고를 그는 보다 넓고 다양한 시각으로 조망하여 그 편협함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이는 대학교 때 공학과 미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는 철학을 전공한 저자의 이력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학문을 대하는 그의 전방위적 사고가 자칫 수박 겉핥기식은 아닌지 의문도 들었으나 지금의 내가 그 학문의 깊이를 판단하는 것은 어림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그가 말하려고 하는 유목적 사유 혹은 가로지르기 같은 개념이 의미하는 바가 현재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과 같이 경계가 사라진 시대에 어느 한 가지 학문만 고집한다는 것 자체가 어찌보면 어리석은 일이 아니겠는가. 우리에겐 보다 총체적이고 다원적인 사유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모순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책을 읽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읽는데 솔직히 힘이 들었다. 지금의 내 능력으로는 이 책의 반도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이 책은 문학과 과학 철학, 이렇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서술되어 있었는데, 문학 부분만 재밌게 읽었고, 과학 부분은 그냥 휙휙 넘겼다. 무슨 도식과 공식이 그렇게나 많은지! 나 자신의 편중된 독서습관과 얕은 지식이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철학. 솔직히 이 부분도 그리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과학 부분에서의 엄청난 수식과 정리를 봤을 때의 뜨악함은 없었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 철학적 소양이 턱없이 부족한 나에게는 저자가 아무리 쉽게 설명해 놓아봤자 어렵게 느껴질 뿐이었다. 아, 독서는 얼마나 해야 하는 것인지!

 

그렇게 저자는 문학과 과학, 철학의 영역을 무시로 넘나들며 방대하고 현란한 사유를 풀어낸다. 무엇보다 나는 그것이 몹시 부러웠고, 나 자신이 무척 부끄러웠다. 물론 나는 저자처럼 철학자도, 과학자도 아닌 지극히 평범한 인간일 뿐이지만, 다방면에 걸친 그의 독서 행위만으로도 내가 부끄러움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확연히 구분되는 독서라는 행위를 통해 세상을 탐구한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멋진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어쩌면 지극히 인간적인 행위이겠지만, 그러한 인간적인 행위가 결국 인간과 인간의 삶을 이해하고 종래에는 이 세상을, 자연을, 우주를 이해하는 일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이 사라지는 그 순간까지 계속될 것임은 분명하다.

 

그래, 지속적으로 다양한 종류의 책을 읽고 다양하게 사고하다보면 무언가 깨달아지는 것이 있겠지. 분명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