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독서

은희경,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창비, 2007

시월의숲 2008. 1. 23. 20:09

<새의 선물>을 읽었을 때를 기억한다. 아마도 다수의 사람들이 그러하겠지만, 그 소설로 인해 나는 은희경이란 작가를 알게 되었고, 책 속에 담긴 냉소적인 시선과 위악적인 포즈에 한껏 매료되었었다. 책의 거의 모든 문장에 줄을 칠 정도로 공감하였고, 냉소와 위악을 통해 삶을 농담처럼 웃어넘길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 그녀가 말하려는 것이 정확히 무엇이었던 간에, 나는 그녀의 소설을 읽으면서 세상을 조롱했으며, 한껏 비웃었다. 냉소와 조롱, 위악이 카타르시스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그것 또한 삶을 견디는 한 방식이었음을, 그리하여 내게 주어진 한 시절을 그렇게 견뎌낼 수 있었음을, 지금, 조금은 알 것 같다.

 

이번에 읽은 은희경의 소설집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는 그때의 은희경과는 좀 달랐다. 냉소와 위악으로 한 시절 견뎌냈던 그 시선이 이제는 조금 깊어지고, 약간은 어두워졌으며, 무거워진 느낌이다. 인간이 지닌 고독을 깊이 파고들어간 느낌이랄까. 여섯 편의 소설을 관통하는 테마가 고독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내면 깊이 들어앉은 고독을 신랄하게 까발리는 대신 그 고독 속에 얼굴을 파묻고 깊은 명상에 잠긴 듯 보인다. 그래서일까? 이번 소설집에는 무언가에 열중하는, 혹은 강박적으로 보이는 인간들이 다수 등장한다.

 

지도에 중독된 사람이 있는가 하면(「지도 중독」), 늘 몽상에 빠져 사는 소녀도 있고(「날씨와 생활」), 다이어트를 하는 남자(「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도 있다. 또한 쌍둥이를 통해 우연과 필연 혹은 어디에서나 존재하는 ‘나’(「의심을 찬양함」)를 보여주기도 하고, 우연한 계기로 과거의 잊어버리고 싶었던 기억을 발견하기도 하며 (「고독의 발견」), 우주 속에 덩그러니 남겨진 자신(「유리 가가린의 푸른 별」)을 발견하기도 한다. 이들의 만남은 하나같이 무언가 결핍되어 있는 듯 허전하다. 하지만 그러한 고독감은 작가에 의해 신화적으로, 상징적으로, 우화적으로, 우주적으로 널리 방사된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방사된 상상력이 결국은 공기처럼 우리를 감싸 안는다는 사실이다. 소설을 읽고 나서 그리 외롭지 않았던 것도 아마 그러한 이유가 아니었을까.

 

냉소와 위악과는 다른 날카로움이 있었다. 은희경이 지녔던 기존의 이미지를 옷에 비유하여, 이전의 옷들이 화려하고 경쾌한 옷들이었다면 이번 옷들은 검은색 슈트 가깝다고 말했던 어느 소설가의 말처럼. 그것이 <새의 선물>의 은희경을 생각한다면 썩 마음에 들지 않는 변화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언제까지 냉소만 품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화려하고 스포티한 옷을 입은 은희경이나 검은색 정장을 입은 은희경이나 똑같은 은희경임은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부인할 수 없게 만드는 힘이 그녀의 소설에는 있다. 그녀는 그렇게 서서히 변화하고 있다. 다음에는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