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독서

아멜리 노통브, 『적의 화장법』, 문학세계사, 2006

시월의숲 2008. 4. 16. 18:53

어쩌면 가장 쉽고도 당연한 말일지 모르겠다. '적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 있다'라는 말. 아, 이걸 스포일러라고 할 수 있을까. 어쨌건 이 소설을 좀더 깊이 음미하고 싶다면, 아직 책을 읽지 않은 당신, 이쯤에서 그만 읽기를 바란다. 이미 앞의 문장으로 인해 눈치를 챘다면 어쩔 수 없고.

 

그 적은 비즈니스 때문에 출장을 가야하는 사람에게, 비행기 출발이 지연되는 틈을 타 나타난다. 출발할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 밖에 없는 공항 대기실에서 적은 능글능글한 미소를 지으며 모든 것을 다 아는 듯한 얼굴로 다가온다. 완전한 무방비상태. 그가 말을 걸기 시작할 때 이미 게임은 거의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다.

 

적은 나와 전혀 다르게 생겼고, 나보다 훨씬 세련되고 지적인 언어를 구사하지만 그것은 비논리적이고 과장되어 있으며, 억지스럽고, 시종일관 짜증스러우며, 무엇보다 엄청나게 끈질기다. 또한 적은 나의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며 그리하여 나를 죽음으로까지 몰고 갈 수 있다. 죽음! 이 얼마나 엄청난 적이란 말인가! 고작 말로서 나를 벼랑 끝으로 몰아세울 수 있다니.

 

이제 그만 사라졌으면 좋겠고, 심지어는 내가 적을 없애버리고 싶어질 정도의 증오심을 가지게 만드는, 그 적의 정체는 무엇인가. 이미 알고 있겠지만,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자신의 죄의식이라 해도 좋고 양심이라 해도 좋다. 그게 그거니까. 그것은 끊임없이 또다른 나를 괴롭힌다. 승자도 패자도 모두 자기 자신일 뿐인 싸움. 중요한 사실은 어쩌면 이기지도, 지지도 못할 그 싸움을 우리는 매순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모두 주인공처럼 갑자기 공항 대기실에서 벌떡 일어나 벽에다 머리통을 박으며 '자유, 자유, 자유'라고 외치는 결말을 맞이할 수 밖에 없는가? 그래서 진정 자유로와질 수 있다면! 그것도 하나의 해소방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적으로부터 끝내 벗어날 수는 없다. 어떤 형태로든 우리는 우리 내부에 적을 키울 수 밖에 없도록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것이 우리를 조금이나마 인간답게 만든다. 즉, 죄의식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을 살게 만들기도, 죽게 만들기도 한다. 소설의 주인공인 제롬 앙귀스트처럼.

 

이 소설 또한 <살인자의 건강법>처럼 전체가 대화로 되어있는 소설이었다. '나의 적은 다름아닌 나'라는 철학적 명제를 살인과 결부시켜 유머러스하면서도 재치있는 입담으로 풀어낸 매력적인 소설이다. 적의 화장법은 놀라울 정도로 능숙하고 또 화려했다. 나 스스로 고개숙일 수 밖에 없을 만큼.

 

아, 당분간은 노통브의 소설만 읽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뭐, 나쁠거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