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독서

아멜리 노통, 『살인자의 건강법』, 문학세계사, 2004

시월의숲 2008. 4. 7. 17:46

아, 이렇게 놀랍고도 재미있는 소설이 있다니! 서양 어느 대문호는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조건으로 감탄사를 남발하지 말라는 항목을 넣었다는데, 이 소설을 읽으면서는 결코 감탄사를 남발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말장난 같으면서도 치밀하고 논리적이며 빈틈이 없는 언변을 가진 사람 앞에서 입을 헤, 벌리고 있는 기분이랄까.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대문호를 몇 명의 기자들이 취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소설의 거의 대부분이 대화로 이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학과 철학, 예술을 아우르는 방대한 식견에 그 깊이가 만만치 않았다. 또한 프레텍스타 타슈라는 대작가를 취재하기 위해 등장하는 기자들이 작가가 풀어내는 촌철살인의 언변에 나가떨어지는 장면과 그 중 한명의 여기자만이 오히려 작가를 공격하는 장면 등을 읽을때면 책에서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재미있고 통쾌했다. 여기자에 의해 밝혀지는 미완의 소설 <살인자의 건강법>에 담긴 비밀도 흥미진진했고.

 

소설의 거의 대부분이 대화로 되어 있어서인지 무척이나 빨리 읽혔다. 그렇다고 결코 가볍게 읽혔다는 뜻은 아니다. 빨리 읽히는 것과 가볍게 읽히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아멜리 노통의 <살인자의 건강법>은 속도감이 있으면서도 어느 한순간도 가볍게 읽어 넘기지 못할 무거움(소설 속에 담긴 문학에 대한 성찰이랄까 은유같은 것?)이 있었으며 무엇보다 읽는 '맛'이 있었다. 음... 찰지고, 새콤달콤하고, 화려하지만 쉽게 잊혀지지 않는 맛이랄까. 암튼 놀라운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