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험담

시월의숲 2008. 5. 20. 17:32

오늘 어떤 이의 차를 타고 오면서 자연스레 그와 이야기하게 되었다. 이전에도 몇 번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지만, 나이 차이 때문인지, 공통의 관심사가 없어서인지 대화는 지루하고 활력이 없었다. 그저 같이 일하면서 생기는 소소한 일과 동료들과의 관계에 대한 피상적인 이야기뿐이었다.

 

그는 같이 일하는 동료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나는 그것에 대해 때론 맞장구를 치고 때론 조심스럽게 반대의사를 말하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하지만 말을 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그가 부정적으로 말하는 사람들에 대해 나도 똑같이 말하고 있음을 느꼈다. 이게 아닌데, 생각하면서도 어느새 나도 그와 마찬가지로 누군가를 험담하고 있었던 것이다.

 

말은, 서로가 의견이 맞아서 누군가를 욕하고 있다고 해도, 내가 욕한 사람의 귀에 들어가게 되어있다고 생각하니 여간 찜찜한 것이 아니었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가장 조심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이 말 한마디가 아니겠는가. 그걸 알면서도 나는 그 사람과 같이 누군가의 험담을 하고 말았다. 내 뱉는 순간 결코 주워 담을 수 없는 말, 언어들. 내가 한 말이 전파보다도 빠르게 흐르고 흘러서 그의 귀에 들어간다면 어찌되는가! 나는 또 그에게 변명의 말을 둘러대느라 또 다른 험담과 거짓말을 하게 될른지 모른다.

 

말도 글을 쓸 때처럼 몇 번이고 다듬고 되새겨서  내 뱉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되기까지 얼마만큼의 수련이 필요할지 모르겠지만,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보면 언젠가는 좀 나아지지 않을까?

 

지금 하고 있는 말이 좋은 말이라면 상관없지만 만약 누군가의 험담이라면 그것은 내가 나를 욕하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이리라. 나에 대한 욕은 나 스스로에게 하는 것이, 다른 사람을 통해 듣는 것보다는 덜 고통스러울 것이다. 돌고 돌아온 말은 이전에 내가 내뱉었을 때의 무심함이 아니라 날이 선 섬뜩함으로 나를 벨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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