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아카시아 향기 바람에 날리우고

시월의숲 2008. 5. 8. 16:13

고즈넉한 오후다. 좀 흐리지만 고요하고 한적한 오후랄까. 열어 놓은 창으로 아카시아 향기가 바람에 날려오고, 간간히 농구하는 아이들의 소리가 들려온다. 평화롭다, 라고 하는 말은 이럴 때 쓰는 표현이 아닐까.

 

오늘은 낮기온도 어제에 비해 좀 내려가고 태양도 구름에 가려져 있어서인지 걷기가 한결 수월했다. 한마디로 걷기 좋은 날씨다. 차가 없어 웬만한 거리는 거의 걸어다니는 나에게는 더없이 좋은 날씨라고 할 수 있다. 걸으면서 이팝나무의 하얀 밥풀같은 꽃도 구경하고,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에서 좀 쉬기도 하며, 아카시아 향을 듬뿍 마시기도 하고, 참새들이 포르르포르르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고 웃음짓기도 한다. 이러니까 마치 걷기예찬자라도 된 것 같은데, 뭐 아무렴 어떤가. 걷는 것을 좋아한다면 걷기예찬자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특히 이맘때쯤이면 피어서 향기로 사람을 사로잡는 아카시아! 어떤 이는 아카시아 나무의 해악에 대해서 일장 연설을 쏟아내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그 향기만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만큼 매혹적이다. 정신이 아찔해질만큼 향기로운 아카시아. 그것은 봄의 매혹적인 무법자이다. 무방비상태에서 그것에 당하면 한동안 정신을 차리기 힘들다. 그렇다고 미리 어떤 방비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자연에 늘 무방비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아카시아의 그 아찔한 공격에 몸소 당하지 않을 자는 또 누구던가. 그렇듯 향기로운 적이 있다면 기꺼이 나는 나를 바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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