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자연스러운 것

시월의숲 2008. 5. 31. 22:19

하루 일을 끝내고 집으로 오는 길, 무척이나 화창한 날씨였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논과 밭, 푸른 가로수들이 태양빛과 어우러져 한 편의 그림 속을 질주하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가 얼굴 가득 웃음이 머금어졌다. 아, 푸르게 탁 트인 하늘을 가로지르며 날아가는 새들의 경쾌한 날개짓! 이대로 쭉 어디론가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때쯤 차는 내가 사는 곳에 다다랐다. 아, 그 아쉬움이란!

 

집에 도착해 점심을 먹고 다시 집을 나섰다. 몸에 부드럽게 감기는 바람과 적당한 온기를 품은 햇살을 온몸으로 느끼며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집에서 한 10여분 거리에 있는 자그마한 공원의 산책로를 따라 걷다가 갑자기 튀어 나온 다람쥐에 깜짝 놀랐다. 갈색바탕에 짙은 고동색의 줄이 세로로 길게 나있는, 보송보송한 털을 가진 다람쥐를 보니 새삼 신기하기도 하고, 사람을 보고서도 도망가지 않는 대담함에 놀랍기도 하고, 앞발로 얼굴과 몸을 쓰다듬는 모습이 무척 귀엽기도 했다. 다람쥐를 그렇게 가까이서 본 적은 처음이었다.

 

그냥 웃음이 났다. 주위의 모든 자연물들이 오월의 햇살에 웃음짓고 있는 것만 같았다. 코스모스를 닮은 노란 꽃들은 나를 향해 안녕, 안녕, 하고 말하고, 머리채를 길게 늘어뜨린 수양버들은 나에게 뜻모를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아, 모든 꽃들, 잡초들, 나무들, 벌들, 나비들, 다람쥐들, 참새들도 이 화창한 날씨를 즐기고 있는 것이다! 그들도 나를 향해 웃음짓고 있었기를 바라는 것은 너무 이기적이고 인간중심적인 생각일까? 어쨌건 나도 그들 중의 하나인데...

 

생각보다 많이 걸었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화창한 날씨로 인해 절로 웃음이 나다니. 하지만 이런 생각도 든다. 날씨에 따라 기분이 달라지는 것은 어쩌면 내가 자연과 밀착되어 있지 못하다는 증거가 아닐까 하는. 비가 오면 비가오는데로, 화창하면 화창한데로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할텐데, 아직 나는 그렇지 못하다. 무엇이 더 자연스러운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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