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난감한 일

시월의숲 2008. 6. 5. 17:58

오늘 내가 일하는 곳의 상사로부터 책을 한 권 받았다. 레나 마리아가 쓴 <발로 쓴 내  인생의 악보>라는 제목의 자서전이었다. 레나 마리아는 스웨덴 태생으로 태어날 때부터 양 팔이 없고 왼쪽 다리마저 짧은, 기형의 신체를 타고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역경을 딛고 가스펠 가수로 세계를 누비며 복음을 전파하는, 인간승리의 표상이기도 했다.

 

내게 책을 권한 사람은 여러차례 나를 따로 불러서 신앙생활을 할 것을 권유할 만큼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딱히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그러하듯 나도 처음에 그가 신앙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 영 내키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믿음이라는 것은 누군가가 강요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누군가의 권유에 의해서가 아닌 나 스스로의 이끌림에 의한 것이어야 그 믿음이 더욱 견실해지지 않겠는가? 그가 하는 말들은, 미안하지만, 그리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그 마뜩찮음은 또한 일부 몰지각한 기독교인들로 인해 생긴 부정적인 선입관 때문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책을 받아들고 나오면서 많은 생각들이 교차했다. 한가지 확실한 생각은 참 난감한 일이라는 것이다. 물론 종교가 인간에게 긍정적인 작용을 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아직 나는 그 어느 종교적인 믿음도 가지고 싶지 않다. 종교적인 신념에 빠지면 모든 것들이 종교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나는 좀 더 다양하게 사고하고 싶다. 물론 종교적인 시선도 그 다양한 사고 속에 포함된다. 믿음으로서가 아닌, 과거 오랜 시간동안 우리의 역사를 지배해 온 하나의 학문으로써 종교를 바라보고 싶다. 아직까지는.

 

그래서 결론은 책은 그냥 책이라는 거다. 그것이 성경이든, 터무니없는 간증으로 가득한, 오로지 찬양만을 위한 책이든 간에. 어찌되었든 레나 마리아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우리에게 큰 의미를 던져주지 않는가. 책 속에 나타난 그녀의 역경을 딛고 일어선 삶도 대단하지만, 그녀의 부모들도 그녀만큼, 아니 그녀보다 더욱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의 부모가 아니었다면 그녀는 지금과 같은 자리에 설 수 있었을까? 내가 감동했던 것은 그녀에게서가 아니라 그녀의 부모들에게서였다. 신앙은 그렇게 역경에 처한 모든 사람들에게 살아갈 힘을 주기도 한다.

 

그래, 책은 그저 책으로서 받아들이면 될 일이다. 아, 그런데 이러다 어느 순간 내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가 되어 있으면 어쩌지? 음... 나는 왠지 천주교가 좋던데... 불교, 아니 산속에 파묻힌 고요한 절도 좋고...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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