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투정

시월의숲 2008. 12. 3. 21:36

직장에 다니기 전에는 오로지 직장을 가지기 위해 그 외의 것들은 포기하다시피 하고 살았는데, 직장을 가지고 난 지금은 그 직장 때문에 그 외의 것들은 포기하고 사는 듯하다. 단조로운 직장 생활과, 사람들과의 어쩔 수 없는 부대낌과 그로인해 생기는 크고작은 잡음들이 요즘 내 신경을 갉아먹고 있다. 내가 고작 이것밖에 되지 않나 하는 자책과 그렇게까지 해야하나 하는 회의가 나를 잠식한다. 인간, 인간, 인간들. 인간들과의 관계. 나와 잘 어울릴 것 같았던 이 일이 어쩌면 나와 잘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든다. 그렇다면 내 적성은 무엇인가? 나는 어떤 일을 해야 웬만한 고통 쯤은 감수하면서까지 그것에 몰두할 수 있을까?

 

너무나도 나약한 생각이다. 고작 이 따위의 신경쓰임 때문에 이런 어처구니 없는 생각까지 하다니.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것이 어처구니 없는 일인가? 그건 아닐 것이다. 생계만을 위해서 일을 한다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물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까지 벌 수 있다면야 더할 나위없이 좋겠지만. 문제는 아무런 감흥이 없는 일을 해서 번 돈으로 자신이 진정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과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해서 돈을 버는 것, 둘 다 어렵다는데 있다. 소설가 김훈도 밥벌이의 지겨움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나는 안다. 이 모든 것들이 다른 이들의 눈에는 투정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래, 사실 나는 투정을 부리고 싶은 것이다. 잘근잘근 씹어서 형태조차 알아볼수 없을 정도로 너덜너덜하게 누군가를 욕하고 싶고, 한없이 나약한 나를 죽을만큼 자학하고 싶고, 그래서 이기적이게도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고 싶어서. 내가 나를 달래는 일에 나는 벌써 지쳐가는 것인가? 모든 상처는 자신이 스스로 치유해야 한다는 말 말고, 나는 무엇을 더 기대하는 것일까. 도대체 누군가에게?

'어느푸른저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늦잠  (0) 2008.12.09
내 차가운 피를 용서해  (0) 2008.12.05
소설가와 시인  (0) 2008.12.01
어느 장례식 풍경  (0) 2008.11.30
부디 그러하기를  (0) 2008.1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