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독서

김연수, 『밤은 노래한다』, 문학과지성사, 2008.

시월의숲 2009. 1. 30. 21:34

처음 이 책을 집어들었을 때 나는 우선 걱정이 됐다. 평소 김연수의 작품들이 내겐 너무 어렵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가 소설 속에 녹여놓은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시선이 내겐 무겁고 부담스럽게 다가왔었다. 그건 내가 가진 지식이 부족하다는 뜻이기도 하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책은 어딘가 끌리는 것이 있었다. <밤은 노래한다>는 제목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책의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에곤 쉴레의 그림 때문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민생단 사건이라는, 우리 민족끼리 죽이고 죽였던 그 참혹한 모순의 정체가 궁금했기 때문일까?

 

1930년도 초반 동만주의 항일유격근거지에서 벌어진 '민생단 사건'을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단순한 역사소설이 아니었다. 작가는 그 사건을 멀찌감치 떨어뜨려놓고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현장 속에서 그 시절 사람들과 같이 숨쉬며, 그들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이 소설은 어떤 깨달음에 관한 이야기이고 하고,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도 하며, 혹독한 성장통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시절 우리나라 사람들이 처한 모순과 그 모순이 바로 정체성이 되어버리는 슬픈 역사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것은 끝난 이야기가 아니라 끝이 없는 이야기, 영원히 계속되는 밤의 노래에 관한 이야기다.

 

나는 이 소설의 줄거리보다는 그들이 처한 상황과 심리변화에 중점을 두고 읽었다. 그것은 어쩌면 이 책을 제대로 읽지 못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하고 싶었다. 아니 그럴 수 밖에 없었다. 같은 생각과 열정과 희망을 품은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서로에게 총구를 드리울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그 기막힌 상황 앞에 피를 흘리며 죽어가야 했던 사람들의 노래가 바로 이 소설이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자는 자신을 설명하지 못한다. 오직 죽은 시체들만이 자신들이 누구이고,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 안다. 그래서 그들이 부르는 노래는 끝나지 않는다.

 

그리고 나를 부끄럽게 했던 그 말,

"사랑이 뭔지도 모르는 자이니 증오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는 건 당연하겠지. 사랑도 마찬가지지만, 증오 역시 감정만으로는 존재할 수 없지. 사랑이든 증오든 오직 행동으로 실현될 때만 존재할 수 있는 거야. 네 몸으로 사랑할 때, 그게 사랑이야. 입으로 아무리 떠들어봐야 소용이 없어. 뭔가를 증오한다면 얼마만큼 증오하는지 네 몸으로 보여봐. 사랑한다면 사랑을 하고, 증오한다면 증오를 하란 말이야. 하지만 머릿속으로나, 그 잘나나 혀가 아니라 너의 신체로 보여달란 말이야. 세상 모든 사람들이 똑똑히 알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