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독서

조세희, 『침묵의 뿌리』, 열화당, 1986.

시월의숲 2009. 2. 18. 21:26

조세희의 <침묵의 뿌리>를 읽었다. 예전에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란 소설을 무척 감명깊게 읽어서 그의 다른 작품도 읽어보고 싶었는데, 이제서야 읽게 되었다. '읽게 되었다'라는 수동형은, 그 책을 읽지 않은  어떤 이유가 있다는 뉘앙스를 풍기는데 사실 그렇지는 않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읽으면서 <침묵의 뿌리>라는 소설 제목이 머릿속에 각인되었고, 오랜 시간이 지나 우연히 도서관에서 그 책이 눈에 띄었을 뿐이고, 반사적으로 어서 읽어봐야겠다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이 책은 딱히 소설이라고도 부를 수 없는 책이었다. 표지에도 소설 혹은 에세이라는 수식어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이름도 생소한 제3작품집이라는 용어가 찍혀있다. 그것이 어떤 의미인가에 대해서는 책을 읽어나가면서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에세이면서 소설이고 사진집이었던 것이다. 무어라 딱 꼬집어 규정할 수 없는, 그래서 제3작품집이라는 말로밖에 표현할 길 없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70년대 개발의 영광 아래에 신음하던 난장이들의 삶을 상징적이면서 섬세하고 명징하게 그려놓은 것이라면, <침묵의 뿌리>는 그러한 난장이들이 80년대에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고, 여전히 나을 것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울분과 그렇게 만든 우리 모두의 죄에 대해서 기록한 것이었다.

 

둘 다 불합리하고 억울한 삶에 대한 고발의 성격을 띠지만, 그 방식은 사뭇 다르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보다 문학적이고 예술적인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면, <침묵의 뿌리>는 작가 자신의 목소리가 소설의 형태로서가 아닌 에세이의 형태로, 즉 날 것 그대로 드러나 있어서 예술적인 면에서는 전자보다 조금 덜한 감이 있는 것이다. 그래도 <침묵의 뿌리>만의 장점이 있다면 사진이 실려 있다는 점인데, 사실 사진만큼 어떤 현장을 생생하게 포착하는 예술방식도 없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침묵의 뿌리>는 자신만의 매력을 가진다. 물론 그는 전문 사진작가가 아니기에 아마추어적인 면이 없지 않지만, 그래서 더욱 그의 사진들이 현실감 있게 다가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흑백의 사진들. 쓸데없이 심각한 글보다도 몇 배는 더 감동적인, 오로지 검은색과 흰색으로만 이루어진 그 사진들. 나는 그 사진들을 보면서 내가 아주 어렸을 때의 시절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우리는 그 시절로부터 얼마나 멀리 흘러왔는가. 흘러온 만큼 우리는 진정 자유로워졌는가. 사진 속의 슬픈 눈망울을 한 소녀는 지금 어떻게 변했을까.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밑도 끝도 없는 물음들이 어지럽게 머릿속에 떠올랐다.

 

부끄러움과 울분, 그리고 뜨거운 애정이 가득 담긴 책이었다. <침묵의 뿌리>라는 서정적인 제목과는 달리, 작가는 불합리와 억압과 위선 가득한 세상에서 침묵한다는 것은 죄가 아니겠는가, 라고 묻고 있는 것 같다. 그게 아니라면 70년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행방을 묻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모두들 그 공의 행방에 대해 무지하여 혹은 일부러 침묵하는 세상에서 그 침묵의 뿌리를 파헤치고 싶었던 것인지도, 정말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언제쯤 진정으로 반성할 줄 아는 인간이 될 수 있을까, 종종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