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독서

미셸 투르니에, 『외면일기』, 현대문학, 2006.

시월의숲 2009. 3. 22. 21:32

미셸 투르니에의 <외면일기>를 읽다. 자신의 내면의 정신 상태나 감정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 아닌, 말 그대로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 날씨라든지 이웃사촌, 나무와 꽃, 벌레와 고양이, 건축물 같은 것들에 대한 일기다. 짤막짤막한 단상들을 기록해 놓은 이 책은 모두 열 두 달로 나누어져 있는데, 그렇게 깊은 뜻은 없고 편의상 그렇게 나누어 놓은 것으로 보인다. 각각의 장마다 조금씩 언급되는 날씨 이야기 외에는 특별한 차이점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작가, 특히 소설가이지만 나는 아직 그의 소설을 읽어보지 못했다. <예찬>이라는 에세이를 먼저 읽었고 그 다음 이 책을 읽었다. 하지만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닐 것이다. 수필집에서도 충분히  그의 성찰적이고, 유머 넘치는 글 솜씨를 느낄 수 있으니까. 그의 <외면일기>를 읽으니 내가 평소에 써온 내면일기와는 대조적인 면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그 발견은 흥미로운 일이었고 또 나에게는 상당히 긍정적인 작용을 하였는데, 어떤 반성의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기록하는 것. 하지만 '외면일기'도 어쨌거나 '일기'가 아닌가? 내가 보고, 듣고, 말하고, 경험하고, 느낀 것들도 모두 내면에서 나오는 것들인데... 하지만 그것은 어디에서부터 촉발되느냐는 문제일 것이다. 즉 어떤 섬광 같은 생각이 순수히 내면에서부터 흘러나왔느냐 아니면 외부의 어떤 자극으로부터 촉발되었느냐, 하는. 아, 그러나 그런 것들이 무 자르듯 그렇게 쉬 가를 수 있는 문제였던가?

 

이런저런 의문에도 불구하고 그의 글은 읽는 맛이 있었다. 어쩌면 그것은 프랑스 작가들 특유의 감칠맛일지 모르겠다. 깊고, 맛깔스러운. 훔치고 싶을만큼 탐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