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독서

르 클레지오, 『황금물고기』, 문학동네, 2008.

시월의숲 2009. 5. 23. 10:41

오랜만에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는 것 같다. 예전에는 책을 읽으면 반드시 독후감을 쓰리라 다짐했었는데, 요즘은 책을 읽는 횟수도 줄어들고, 책을 읽었더라도 무언가를 쓰는 일에 게을러지고 있다. 어떤이는 글을 쓰려면 스스로를 고독 속에 밀어 넣을 필요가 있다고 했는데, 나는 지금 고독하지 않은가? 무엇이 나를 책을 읽고 느낀 것을 쓰는 일에서 멀어지게 한 것일까?

 

간간히 책을 읽긴 했다. 함정임의 <나를 미치게 하는 것들>, 히가시노 게이고의 <용의자 X의 헌신>, 투르게네프의 <첫사랑> 같은 책들. 그리고 이번에는 르 클레지오의 <황금물고기>를 읽었다. 사실 그의 소설은, 전에 읽었던 <조서>의 난해함 때문에 선뜻 읽기가 망설여졌다. 하지만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리듯 나는 그 책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읽기 시작했다. 읽으면서 나는 그것이 주인공 라일라가 지닌 무심한 매력 때문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녀가 바로 '황금물고기'였음을.

 

소설의 화자이자 주인공인 라일라는 어렸을 때 누군가에게 납치된다. 달을 숭배하는 아프리카 어느 부족의 후손이었음을 짐작케하는 귀걸이만을 지닌채 그녀는 아랍지역을 시작으로 프랑스로 미국으로 정처없는 방랑을 계속한다. 그녀의 삶은, 처음에는 타의에 의해 시작되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신의 의지로 자신의 삶을 한 곳에 머물게하지 않았다. 그녀는 삶이란 것이 처음부터 자신의 의지대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찌감치 깨달았기 때문에(모순적이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스스로를 시간의 흐름에 맡길 수 있었던 것이다. 아무런 미련과 기대를 가지지 않고.

 

그녀는 결국 자신이 지닌 귀걸이가 암시하는 땅으로 간다. 그것은 필연적인 결과였다. 그렇게 멀리 돌고 돌아온 그녀지만 결코 자신의 삶이 절망적이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한 항해 자체가 그녀의 삶이었고, 그녀 자신이었음을 누구보다 스스로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아마도 라일라처럼 그렇게 떠돌아 결국엔 자신이 태어났던 곳으로 돌아오는 것이 인간이고 또한 삶이라고 말하고 있는 듯 하다. 아니, 원래 인간이란 문명화되기 이전의 원시의 땅, 미지의 땅에서 왔으며 그런 인간이 돌아가야 할 곳도 마땅히 그곳이어야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솔직히, '신성의 언어를 흩뿌린 것 같은' 소설이라는 찬사에는 적극 동의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적어도 인간의 본질 저 깊은 곳에 존재하고 있는(그렇게 믿고 싶은) '신성'을 찾아가는 여행임에는 틀림없는 소설이라고 말하고 싶다. 원론적이고 철학적인 함의를 담고 있는 소설이기에 책장이 그리 쉽게 넘어가지는 않았다. 또 어떻게 보면 상당히 진부한 테마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신선함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개인적인 불만과 단점에도 불구하고 라일라가 지니고 있는 상징성은 여전히 바다같이 시퍼렇고 물고기같이 퍼덕이는 매력을 풍긴다. <황금물고기>라는 제목과 함께. 그것이 내가 이 책에 빠져들었던 이유이다.

 

그리하여 나는 또다시 나만의 항해를 한다. 멀리 돌아가더라도 언젠가는 라일라처럼 '그곳'에 도착하게 될 것임을 믿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