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독서

베른하르트 슐링크,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이레, 2004.

시월의숲 2009. 5. 28. 21:30

내가 감명깊게 읽은 소설이나, 너무 유명해서 직접 읽지 않아도 무슨 내용인지 다 아는 소설을 읽었을 경우, 그 책에 대한 감상을 쓰는 일은 그렇지 않은 책을 읽고 났을 때보다 더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책을 감명 깊게 읽었으면 읽은만큼 그것을 표현하는 일에 더 부담을 느끼고, 어떻게 하면 이 뭉클함을, 이 슬픔을, 형언할 수 없는 이 감정을 잘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하기 때문이다. 또한 제목만 들어도 누구나 다 아는 작품을 읽었을 경우에는 그에 대한 다른 이들의 감상 또한 많이 봐왔기 때문에, 그것 외에 더 어떤 말을 덧붙일 수 있을까 난감하기 때문이다. 이런 난감함과 표현에의 어려움은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를 읽고나서도 찾아왔다. 도대체 이 느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지? 마냥 좋다, 감동적이었다, 슬펐다, 뭉클했다 같은 말들은 이미 아무런 감흥도 일으키지 못한 죽은 언어들이 아닌가!

 

케이트 윈슬렛이 한나 슈미츠라는 주인공 역을 맡아 아카데미 영화제의 여우주연상을 받은 영화의 원작이라는 사실만으로 이 소설을 집어들었다. 열 다섯의 나이에 서른 중반의 여인과 사랑에 빠진  남자 주인공. 간염에 걸려 길거리에서 구토를 하며 쓰러진 그를 한나 슈미츠가 구해주는 장면으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우선 자신의 온 몸과 마음을 바친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는 그녀의 부탁으로 그녀에게 책을 읽어주게 되는데, 그 이후부터 책 읽어주기, 샤워, 사랑 행위 그리고 나서 잠시 같이 누워있기가 그들 만남의 의식이 된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는 불현듯 사라지고, 남겨진 그는 그녀의 사라짐이 자신의 탓은 아닌지 괴로워한다. 법대생이 된 그는 우연히 법정에서 피고인으로 서 있는 한나 슈미츠를 보게 된다. 그때부터 소설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드는데, 이는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에서 죄의식과 수치심, 더 나아가 독일이 안고 있는 치욕스런 과거까지 돌아보게 만든다. 죄있는 사람을 사랑한 것이 또다른 죄가 되는가. 아무 죄도 없는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 몬 그 순간에 존재했던 또다른 사람들. 그들의 선택과 상황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개인적인 수치심을 감추고 강한 사회적 처벌을 받겠는가, 아니면 개인적인 수치심을 드러내고 약한 사회적 처벌을 받겠는가.

 

어쩌면 단순명료하게 정리될 수 있는 한나 슈미츠의 과거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는 과거의 어느 한 시절, 한나 슈미츠에게 책을 읽어주었고, 샤워를 한 후 사랑을 나누었으며 그리고 나서 잠시 같이 누워있었다. 자신의 온 몸과 마음을 바쳐 사랑한 그 기억에서 그는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다. 자신의 잘못으로 그녀가 떠나갔다는 죄의식에서 벗어날 수 없었기에 더욱.

 

첫사랑에 빠진 주인공의 심리가 잘 표현되어 있었다. 첫사랑의 환희와 설렘, 그 이후의 배신과 죄의식 그리고 수치심까지. 겉보기에 그저 남녀간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지만, 여주인공이 처한 상황에 대한 남자 주인공의 고뇌는 독일의 젊은 세대와 집단 학살을 저지른 과거를 제대로 청산하지 않고 있는 그 윗 세대간의 풀리지 않는 갈등으로도 읽힌다. 그 갈등에의 해결가능성 혹은 젊은 세대의 윗 세대에 대한 포용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까.

 

아, 그래서 난 또 이렇게 빙빙 돌려서 이 책의 감동을 말할 수밖에 없겠다. 철학적이면서도, 아름답고, 아련한 아픔이 밀려오는 소설이라고. 이 말을 하기 위해서 나는 무슨 말을 그리 구구절절 늘어놓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