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난 자와 남겨진 자가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지 알고 싶다면 그들이 무엇을 말하지 않았는지 살펴보라. 떠난 자가 감춘 것은 남겨진 자의 얼굴에, 남겨진 자가 감춘 것은 떠난 자의 표정에 드러나니까. 떠나든 남겨지든 모든 것을 말할 수도, 아무것도 말하지 않을 수도 없는 자는 어떤 것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으니까. 어떤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어떤 것을 말하지 않아야 하니까. 영원한 침묵이 우리의 입술에 손가락을 얹기 전까지는.
왕비가 죽었다. ( ) 왕은 귀를 잘랐다.
플롯은 잘라내는 것이다.
늘어진 정신의 군살을.
상상의 요철을 벼리기 위해.(46쪽)
- 김경욱 산문, <슬픔의 왕, 죽음의 왕비> 중에서
- <작가세계> 2009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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