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만한지나침

함정임, 《나를 미치게 하는 것들》, 푸르메, 2007.

시월의숲 2009. 5. 12. 19:59

감탄하는 것도 능력이다. 반응하고, 표현하는 것도 능력이다. 불 꺼진 요트경기장, 철 지난 해운대 모래밭을 거닐며 계속 생각한다. 우리는 반응하고, 표현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무대를 향해, 아니 세상을 향해, 브라보! 외치는 일이 어쩌면 그동안의 삶을 뒤집는 일만큼이나 힘든 일일지도 모른다. 살아도 산 것이 아닌 게 하루 이틀이 아닌 것. 그것이 익숙해져서 삶이 되어버린 것. 단숨에 집어삼킬 듯 몰아치던 파도도 이내 물결을 거두어간다.(91~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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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 왜 위대한가. 시대를 초월해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존재하나 그것은 처음 그대로가 아닌 불완전한 상태이다. 불완전한 실존에 바치는 평범한 인간의 위대한 열정. 순간, 인간은 예술을 뛰어넘는다.(1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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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방을 벗어나 조금 걸을 수 있거나 전철이나 버스 정도를 타고 움직일 마음이 있다면 내가 살고 있는 공간으로의 여행은 어떨까. 내가 몸담고 있는 도시의 지도를 펼쳐놓고 그동안 간간이 별렀지만 생업에 밀려 돌아서면서 잊어버리곤 했던 내 생활 속 미지의 장소를 찾아가는 것. 이 또한 아주 소박하고도 멋진 여행이 되지 않을까?(15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