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만한지나침

수전 손택, 《해석에 반대한다》, 이후, 2002.

시월의숲 2009. 7. 17. 20:29

 

지금 중요한 것은 감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우리는 더 잘 보고, 더 잘 듣고, 더 잘 느끼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의 임무는 예술작품에서 내용을 최대한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작품 속에 있는 것 이상의 내용을 더 이상 짜내지 않는 것이다. 우리의 임무는 내용을 쳐내서 조금이라도 실체를 보는 것이다.

오늘날, 예술에 대해 뭔가를 말하려 한다면 우리는 예술작품(그리고 거기에서 유추한 우리의 경험)이 우리에게 훨씬 더 실감나도록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비평의 기능은 예술작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예술작품이 어떻게 예술작품이 됐는지, 더 나아가서는 예술작품은 예술작품 뿐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해석학 대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예술의 성애학(erotics)이다.(34~35쪽)

 

 - '해석에 반대한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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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작품을 예술작품으로 만난다는 것은 특정한 경험을 얻는 것이지, 어떤 문제의 해답을 듣는 것이 아니다. 예술은 무언가에 관한 것만이 아니다. 예술은 그 자체로 무언가이기도 하다. 예술은 세상 속에 있는 어떤 것이지, 그저 세상에 관해 말해주는 텍스트나 논평은 아니다.

나는 예술작품이 완전히 자기 지시적인 세계를 창조한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물론, (음악은 중요한 예외가 되겠지만) 예술작품은 현실 세계에 대해, 그리고 우리의 지식, 경험, 가치관에 대해 주의를 기울인다. 예술작품은 정보와 평가를 제시한다. 그러나, 예술작품 고유의 특징(철학, 사회학, 심리학, 역사 등 사변적 지식이나 과학적 지식에 고유한 특징)은 개념적 지식을 창출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작품 자체에 완전히 사로잡히거나 매혹된 상태에서 우리가 어떤 흥분, 참여, 판단에 연루될 수 있도록 만드는 데에 있다. 우리가 예술을 통해서 얻는 지식은 우리가 아는 어떤 것의 형식, 즉 스타일에 대한 경험이지, (가령, 사실이나 도덕적 판단 같이) 어떤 것 그 자체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는 말이다.(45~46쪽)

 

- '스타일에 대해' 중에서

 

 

*

 

 

우리 시대는 실로 극단의 시대다. 우리는 무시무시하기는 마찬가지이지만 그 운명은 서로 반대되어 보이는 두 개의 지속적인 위협, 즉 끝날 줄 모르는 일상의 진부함과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공포 속에 살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쌍둥이 요괴를 극복하고 살아갈 수 있게끔 해주는 것이 바로 대중 예술이 다량으로 공급해주는 환상이다. 그 환상이 해줄 수 있는 한 가지 일은 마지막이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색다르고 위험한 상황으로 도피시켜줌으로써, 우리를 이 견딜 수 없는 따분함에서 구제해내며 공포―실제의 혹은 예상되는―를 잊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환상은 심리적으로 견딜 수 없는 것에 우리를 단련시켜 그 공포를 일상적인 것으로 만들어주는 일도 해준다. 한편으로, 환상은 세계를 미화한다. 또 한편으로, 환상은 세계를 중화시킨다.(334쪽)

 

- '재앙의 상상력'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