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독서

파트리크 쥐스킨트, 『비둘기』, 열린책들, 1996.

시월의숲 2009. 6. 18. 22:02

 

 

이것은 조나단 노엘이라는 한 남자의 내면에 관한 이야기다. 괴팍하고 혼자있는 것을 무엇보다 좋아하고, 그래서 당연히 그 무엇에도 자신의 고요한 삶이 방해받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중년의 남자. 그 남자가 왜 그렇게 되었는가를 밝히기 위해 그의 유년시절을 들여다볼 필요는 없다. 설사 그의 지독한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유년시절 있었던 사회적인 사건 혹은 개인적인 배반, 부모의 존재 등이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는 말하지 못하더라도. 그러나 중요한 것은 과거가 아니다.

 

현재 그는 은행원의 경비로 일하면서 돈을 모아 자신의 집을 장만할 기대에 부풀어 있다. 조금만 일을 더 하면 돈은 자신의 수중으로 들어올 것이고 그러면 미처 지불하지 못한, 그래서 아직은 완전히 자신의 소유가 아닌 집의 대금을 지불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으리으리한 집은 아니지만 그래도 자신의 능력으로 장만한 자신의 집, 자신만의 공간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조나단 노엘은 여느때처럼 아침 일찍 일어나 밖에 있는 공동 화장실로 가기 위해 자신의 집 출입문을 연다. 그런데 바로 그곳에 잿빛 비둘기 한 마리가  떡하니 버티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는 화들짝 놀라 문을 쾅 닫아버린다. 곧이어 그의 심장이 급격히 빨리지기 시작한다. 여기서부터 그의 고뇌가 시작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깟 비둘기가 뭐가 무섭냐며 조나단 노엘을 비웃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그것이 그 무엇보다 심각하고 지극히 고통스러운 사건이었다. 그는 생각한다. 출근을 해야 하는데 밖에는 비둘기가 버티고 있고, 문을 열고 비둘기를 쫓으려고 한다면 비둘기는 순간 퍼드득 날아올라 자신의 얼굴을 할퀼지 모르며, 자신의 집으로 날아 들어와 더러운 똥을 온사방 싸대며 마치 자신의 집인 것처럼 더러운 깃털을 흩날리며 날아다닐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집 밖을 나서지 않으면 출근을 하지 못할 것이며 그러면 직장에서 짤리는 것은 시간문제이고, 직장에서 짤린다면 월급을 못받게 되므로 이제 이 집은 자신의 소유가 아니게 되는 것이다. 아, 그에게는 이것이 실로 그의 삶을 송두리채 흔들어놓는 중대한 일인 것이다!

 

이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조나단 노엘이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서술한다. 그의 성격에서부터 비둘기 사건이 터진 후 그가 느낀 모든 세세한 감정의 변화들을 마치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묘사한다. 이 소설을 읽노라면 조나단 노엘이 처한 상황이 실로 급박한 상황이라는 것을 절로 느끼게 된다. 아니, 도대체 비둘기가 뭐길래! 라는 처음의 생각은 슬쩍 사라진채. 읽고 나면 조나단 노엘의 내면 갈등이 유쾌하게 느껴질 정도로 특이하고 재밌다는 생각이 들지만 읽는 동안은 그가 처한 상황이 절망적으로 느껴지면서 어서 빨리 벗어나, 라고 외치고 싶어진다.

 

사람의 내면은 결코 단순하지가 않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소설적인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재밌고, 특이하고, 절망적이며, 유쾌한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