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독서

한재호, 『부코스키가 간다』, 창비, 2009.

시월의숲 2009. 6. 9. 22:01

 

 

 

나도 한 때 백수였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이야 직장에 다니고 있으니 '한 때' 라고 그 시절을 추억할 수 있지만, 정작 백수였던 그 때는 생각하기 싫을만큼 나를 둘러싼 모든 상황들이 절망적으로 느껴졌고, 자신에 대한 회의가 그만큼 깊었던 적이 없었다. 한마디로 암담했었던 것이다.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찾겠다는 생각은 그야말로 사치에 지나지 않았던 시절.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아무런 비전도 없이 죄지은 사람처럼 졸업장만 가지고 도망치듯 빠져나온 대학 졸업식의 풍경은 비단 나만의 것이 아닐 것이다. 지금도 젊은 우리들은 백수의 시절을 지나고 있고 일자리를 찾았더라도 잠시의 소나기만 피할 수 있을뿐인 시절을 보내고 있다. 그래서 여기, 백수소설(?)이라 명명할 수 있는 한재호의 <부코스키가 간다>는 그 자체로도 이미 의미심장하다 하겠다.

 

읽으면서 우선 많이 공감했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청년백수가 백 만을 넘어가고 있다는 뉴스는 이제 뉴스거리도 되지 못한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안정된 직장을 찾아 모두들 고시원으로 학원으로 몰려다니고, 기업들은 신입사원을 뽑지 않으며, 대학생들은 길거리에 넘쳐난다. 이런 시대에 백수소설이라니? 무슨 할 이야기가 있단 말일까? 아니, 생각해보면 이런 시대에 백수소설이 나오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소설이란 사회의 한 단면을 그려내는 것이니까. 아, 이런 재미없는 이야기는 접어두고 소설 속으로 들어가 보면,

 

일단 주인공은 대학교를 졸업하고 잡코리아나 들락거리면서 이력서나 주구장창 쓰는 것이 생활인 백수남자다. 친구 결혼식에서 우연히 만난 학교 후배인 '거북이'와 동거를 시작하게 되는 그 날, 그는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우연히 동네 보장슈퍼 주인인 '부코스키'에 대해서 듣게 된다. 그는 이상하게도 비만 오면 슈퍼 문을 닫고 어디론가 돌아다닌다는 것이다. 이혼을 하고 혼자 사는 중년의 부코스키는 왜 비만 오면 슈퍼를 나와 검은 우산을 쓰고 하염없이 어디론가 가는 것일까? 그것이 궁금했던 주인공은 거북이의 권유로 그를 미행하게 된다. 그렇게 비가 오기만을 기다려 부코스키를 미행하는 주인공은 어느 순간 자신이 부코스키를 미행하는 것처럼 누군가가 자신을 미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다. 그는 누구인가?

 

소설의 줄거리는 아주 간단하다. 그저 주인공이 부코스키를 미행하는 것이 전부이다. 그렇게 미행을 하는 와중에 간간히 주인공의 백수 생활이 덤덤하게 묘사된다. 작가는 주인공의 생활을 그저 건조하면서도 사실적으로 드러낼뿐 백수를 양산하고 있는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대한 분노나 그러면서도 사회시스템에 편입되지 못하는 주인공의 고뇌 같은 것들을 말하지는 않는다. 다만 우회적으로 그러한 문제를 느껴볼 수 있을 뿐이다. 무척이나 간단한 줄거리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은 바로 소설의 추리적 서술 방식이다. 부코스키를 미행하는 것, 말이다.

 

부코스키를 미행하는 것은 실제로 아무런 의미가 없는 행위일지 모른다. 그는 다만 비가 올 때마다 어디론가 걷고 싶었을 뿐이지 사람들의 궁금증을 풀어줄 만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닌 것이다. 주인공도 이 부분에 대해서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특별하지 말라는 법 또한 없지 않은가? 작가는 일견 아무 의미없어 보이는 행위를 추구하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현재 젊은 우리들의 모습을 발견한 것인지도 모른다. 주인공이 다른 누군가에 의해서 또다른 부코스키가 되었듯, 우리는 서로 특별할지 모른다는, 무언가 있을지 모른다는 궁금증을 가지고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이다. 되지도 않을 것을 뻔히 알면서 이력서를 쓰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주인공의 모습과 특별한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 부코스키를 쫓는 주인공의 모습은 그래서 서로 닮아있다. 그것이 젊은 날 한 때의 방황이 될지 그렇지 않을지는 여전히 알 수 없지만.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익명의 도심 속에서 누군가의 뒤를 쫓는다는 설정이 소설의 흥미를 증가시켰다. 결국 우리는 그렇게 백수의 터널을 통과하여 어른이 되는 것일게다. 그 무엇도 특별할 것 없고, 그 무엇도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하지만 그 말은 다시, 모든 것이 다  특별할 수 있고, 그 모든 것이 다 의미가 있다는 말과 같음을 다시 한 번 깨달으면서. 아, 세상의 모든 백수들을 위하여 건배를! 저기, 부코스키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