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독서

롤랑 바르트, 『작은 사건들』, 동문선, 2003.

시월의숲 2009. 7. 21. 21:02

 

 

 

롤랑 바르트의 <작은 사건들>은 얼핏 미셸 투르니에의 <외면일기>와 닮았다. 둘 다 자신이 보고 느낀 순간들을 스케치하듯 그려놓았다는 점에서. 하지만 롤랑 바르트의 그것은 일상을 그저 보이는데로 기록해 놓았다는 느낌이 강한 반면, 미셸 투르니에의 그것은 '외면일기'라는 제목에도 불구하고 롤랑 바르트의 것보다 좀 더 내밀한 인상이 강했다. 아마도 제목 때문일까? 일상의 작은 사건들을 다룬 것이 일기이지만, 그것이 순수하게 '작은 사건들'로 명명되었을 때, '자연'보다는 '인간' 쪽에 무게 중심이 쏠리는 느낌이다. 아, 이제야 감이 좀 잡히는 듯하다. 투르니에의 그것은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에 대한 기록이고, 바르트의 그것은 '인간들'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에 대한 기록이다. 하지만 둘 다 어떤 사건들의 기록임에는 틀림없으며, 나이가 든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는 점에서는 같다.

 

바르트가 말하는 작은 사건들은 끊임없이 누군가를 만나는 것에서부터 발생한다. 그가 만년에 쓴 이 기록들 속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본래의 이름으로 혹은 이니셜(기호)로 등장한다. 그는 모로코에서 혹은 파리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을 관찰하고, 그들에게서 무언가를 느끼고, 그들에 대해서 말한다. 그렇지만 독자들은 그가 언급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어느 누구도 자세히 알지 못한다. 그가 기록하고 있는 것은 그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들의 눈빛, 옷차림, 손가락, 머리카락의 모양과 색깔 등에 관한 것 뿐이다. 사실 그 자신도 그들에 대해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한다. 다만 그들의 그러한 외형적인 특징들을 관찰하고 거기에서 느껴진 자신의 느낌을 담담히 적을 뿐이다. 그가 말하고 있는 작은 사건들이란 바로 그러한 것이다. 그는 말한다. "나는 무언가를 '하고 있는' 자의 위치가 아니라, 무언가 '관해서' 말하는 자의 위치에 있다. 즉 나는 하나의 산물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을 책임진다.'라고."

 

때로 유머러스하고, 때로는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책의 마지막에 실린 글이 쓰인 날짜가 1979년 9월 17일인데, 그 다음해인 1980년 3월에 교통사고로 그는 세상을 떠났다. 그가 떠난 해에도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세상에 태어났을 것이고,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죽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전체적으로 건조하고 일견 냉정한 듯 보이는 그의 글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젊은이와의 사랑이 끝났음을 고백하는 마지막 말에는 거부할 수 없는 절망과 쓸쓸한 죽음의 그림자가 보이는 듯 하다. 여전히 지적인 매력이 넘치지만, 이미 늙고 홀로 된 게이의 쓸쓸한 고백을 듣는 것만큼 비극적인 것도 없으리라. 아니다. 이렇게 말해서는 안된다. 이 또한 그가 말하는 '작은' 사건들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