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만한지나침

생텍쥐페리, 《야간비행, 남방 우편기》, 펭귄클래식코리아, 2008.

시월의숲 2009. 10. 29. 21:23

리비에르는 좀 걸으면서 그를 엄습하는 불안감을 덜고자 밖으로 나갔다. 오직 행동을 위해서만, 극(劇)적인 행동을 위해서만 살아가는 그였지만 이상하게 극이 멀어지면서 사적인 것이 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작은 도시의 소시민들이 야외 음악당 주위를 서성이며 겉으로는 조용한 삶을 살지만 사실을 때때로 연극만큼 무거운 삶을 살기도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질병, 사랑, 죽음 그리고 어쩌면…… 그 자신의 고통이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이로 인해 세상을 보는 눈이 트이지.'라고 그는 생각했다.(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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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아직은 싸울 수 있고 자신의 운을 시험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외적인 숙명이란 없으니까. 그러나 내적인 숙명이란 있는 법. 인간에게는 스스로의 나약함을 깨닫는 순간이 온다. 그러면 현기증처럼 여러 가지 실수가 우리를 엄습한다.(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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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에는 해결책이 없다네. 전진하는 힘이 있는 거지. 그런 힘을 창출해 내면 해결책은 뒤따라 나오는 법일세."(1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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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영원하기를 바라는 게 아니야. 행위와 사물이 갑자기 그 의미를 상실하는 모습을 보지 않으려는 것이지. 그렇게 되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공허가 나타나거든……'(108쪽)

 

 

- <야간비행>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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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스스로 고통스러운지 어떤지도 아직 잘 모르고 있었다. 이미 비탈길에 들어섰고, 어떻게 손을 쓸 새도 없이 미래가 닥쳐왔기 때문이다. 삶이 되는 대로 흘러가게 둘 때에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법이다. 슬픔에 몸을 내맡기는 경우에도 이를 더 이상 느끼지 못한다. 나중에 시간이 흘러 어떤 이미지와 맞부딪히면 그때에는 고통스러워하겠지.(2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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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 숨 막힐 듯한 상태를 알고 있다. 우리 모두 익히 알고 있는 그 상태. 눈앞에 수많은 모습이 흘러갔다. 우리는 그중 하나에 사로잡힌다. 그 모습은 모래언덕과 태양과 침묵의 무게로 정말이지 무겁게 우리를 짓누른다. 한 세계가 우리 위로 내려앉는다. 우리는 나약하다. 밤이 오면 그저 양이나 몇 마리 쫓아버릴 수 있을, 연약한 몸짓밖에 갖추지 못했다. 우리는 삼백 미터밖에 가지 않는 목소리, 그러니 다른 이에게 전달되지 않는 목소리만을 지녔을 뿐이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이 미지의 땅에 떨어진 적이 있다.(259쪽)

 

 

- <남방 우편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