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 시절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면 벅찬 감정으로 말한다. 그 당시를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 본래의 의미보다 쓸데없이 화려하고 매혹적이며 과장된 단어들이 떠오른다면, 아마도 그건 그 단어들이 드러내는 비참한 삶, 바로 내 것이었던 그 비참함을 의미하고 있을 것이다. 또한 그것이 경이로움의 기원이 되었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그 비참함을 가장 고상한 물건들의 이름으로 기록하면서 그 시절의 명예를 되찾고 싶다. 나의 승리는 언어로 이룩된 것이다. 나로서는 그 호화로운 말들에 승리를 되돌려 주어야 하지만 그러한 미사여구를 구사하도록 하는 비참한 삶에 축복을 내릴 것이다.(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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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무나 무거운 슬픔을 몸에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일생을 계속 그렇게 떠돌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방랑은 단순히 나의 생애를 장식하는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이제 기억나지 않지만, 신에게 바친 나의 온갖 비참한 삶이 떠올랐다. 인간들과 멀리 떨어진 고독 속에서 내 온몸이 곧 사랑이자 헌신이었다.(104~1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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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감히 알아차릴 수 없었다. 그 아름다움의 비밀을 탐구하기 위한 것을 제외하고, 만약 그 아름다움을 믿으면, 그 배후에는 나를 희생자로 만드는 속임수가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그 아름다움을 거부함으로써 시를 발견했다.
"그렇지만 그러한 아름다움은 나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나는 그 아름다움을 마음속에 기록해 두는 동시에, 그 아름다움이 나의 비참함을 설명하기 위해 내 주변에 그렇게 분명한 모습으로 있음을 알게 되었다."(106~1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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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비참한 삶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많이 알고 있었고, 그것이 처절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여기서 나는 달빛 아래 그 윤곽이 새겨지고, 나뭇잎 그늘 속에서 도무지 알 수 없는 수많은 그림자로 뚜렷하게 드러나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가난은 더 이상 깊이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두터운 고난과 고통을 가지고 그 세계를 관통한다는 위험한 특권의 실루엣에 불과할 뿐이다. 또한 나는, 비록 꽃일지라도 밤에는 그것이 검게 보인다는 것을 알았다.(1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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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무리 겉모습이 이상하게 보여도 모든 행동에 대해서, 그것을 깊이 통찰하는 일 없이 단번에 정당화시키고 있음을 체험했다. 아주 이상하게 보이는 몸짓들이나 태도들은 아마도 내부적으로 어떤 필연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1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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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반과 절도와 동성애가 이 책의 근본 주제이다.(2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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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성(神聖性), 그것은 바로 고통을 유익하게 사용하는 데 있다. 그것은 악마를 신이라고 강변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것은 악의 고마움을 인정하는 것이다.(2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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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세계와 대립하고 있다. 이 세계는 나를 구속하고 재단하면서 상처를 주고 날카로운 각을 내세운다. 그것은 내가 오려 낸 형태보다 더 날카롭고 더 잔혹하다. 하지만 그럴수록 나는 더 아름답고 더 찬란한 존재가 된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행위가 완성될 때까지 그것을 추구해 나가야 한다. 그것의 출발점이 무엇이었든 그 끝은 아름다워야 한다. 어떤 행동이 추잡하게 보이는 것은 그것이 아직 완성되지 못했기 때문이다.(310~3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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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식 없는 자존심은 존재하지 않는다. 자존심이 가장 과감한 자유라면, 그리고 그 자존심이 자존심으로 짜여진 내 죄의식을 세워 주는 신비스러운 망토라면, 나는 죄인이 되기를 원한다. 죄의식은 괴장한 행위(혼돈 상태를 파괴하는 행위)를 야기한다. 만일 죄지은 자의 마음에 흔들림이 없다면, 그는 자신의 마음을 고독이라는 초석 위에 게양하고 있는 것이다.(왜냐하면 오직 죄를 지은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그 죄가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죄라야 하고, 또 그 자가 죄를 저지를 만한 가치가 있는 자라야 하기 때문이다.) 고독은 내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내가 획득한 것이다. 나는 아름다움의 배려로 고독 속에 빠진다.(354~3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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