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독서

장 주네, 『도둑 일기』, 민음사, 2008.

시월의숲 2009. 11. 16. 17:08

 

 

작가가 쓴 자전적 소설인 <도둑 일기>는 아마도 독자들의 오호가 분명히 갈리는 작품일 것이다. 아니, 단순히 좋고 싫음의 상태를 떠나서 읽을 가치도 없는 쓰레기나 배설물에 불과하다는 평가에서부터 악에서 피어난 한 떨기 꽃을 보는 것 같다는 무척이나 시적인 평가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극과 극을 오가는 평가를 받을만한 작품인 것이다. 우선 나 자신이 이 소설을 읽으면서 그런 양극단의 심리상태를 경험했다. 그것은 참으로 묘한 기분에 빠지게 했는데, 도무지 무슨 말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을 정도로 꼬아놓은 문장들을 대할 때면 갑자기 화가 치밀고 그 자리에서 미련없이 책을 집어던지고 싶다가도, 마음을 가다듬고 몇 번 그 문장을 곱씹다보면 어느 순간 그것이 무척이나 고귀한 아름다움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것은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는데, 그만큼 장 주네의 문장은 깨진 바위처럼 거칠고 그것에 사용된 비유는 낯설고 들쑥날쑥 했지만, 그 문장의 전체적인 울림은 무언가 시적인 데가 있었다. 이 소설을 끝까지 읽어 나갈 수 있게 한 힘은 아마도 그러한 극단적인 감정의 동시체험에서 기인한 것이 아닐까.

 

태어나자마자 버려진 사생아였고, 도둑이었으며, 남창에 동성애자였고, 유럽 각지를 떠도는 부랑아였던 작가는 그러한 자신의 삶을 토대로 <도둑 일기>라는 제목의 자전적 소설을 펴냈다. 그는 당당히 이 소설의 근본 주제가 배반과 절도와 동성애라고 말한다. 소설의 내용도 작중 화자가 유럽의 각지를 떠돌아다니면서 남창 생활을 하고, 절도와 강도짓을 하며, 살인을 목도하는 것이 전부다. 그것도 시간의 순서나 원인과 결과에 따라 서술한 것이 아니라 과거를 회상할 때 그런 것처럼 토막난 기억을 그저 생각나는대로 나열하는 식이다. 그 기억들 중에 교도소에 관한 것이 지금 내 인상에 남아 있다.

 

도둑질을 하다 걸려서 교도소를 몇 차례 들락거리면서도 그는 절도를 멈추지 않는다. 교도소의 분홍색과 흰색의 죄수복은 그에게 단지 꽃과의 상관관계를 떠올리게 할 뿐, 교도소는 오히려 그에게 안락함과 사랑, 사색의 장소로 탈바꿈 된다. 실제로 그의 다른 작품들 속에도 교도소가 많이 등장한다고 하니, 교도소는 그에게 어떤 영감의 장소가 되는 것이 틀림없다. 또 그와 함께 범행을 저지르거나, 사랑을 나누는 몇몇 남자들, 스틸리타노, 미카엘리스, 로베르, 아르망, , 뤼시엥 같은 남자들은 그에게 사랑과 시의 언어들을 불러내는 뮤즈로 묘사된다.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배신하고, 굴욕적이고 비참한 일을 강요하게도 하지만, 그에게는 오히려 그것조차 아름다움의 한 부분으로 묘사될 뿐이다. 그의 정체성이 바로 배반이자 절도이고 동성애이기 때문이다. 사회의 모든 금지된 것들, 비참한 것들, 추악한 것들, 폭력적인 것들, 굴욕적인 것들이 바로 그의 삶의 원동력이었고, 그가 추구하는 예술이었고, 아름다움이었으며 그가 진정으로 쓰고자 했던 시()였다. 그는 그것을 찬미해 마지 않으며, 그것에 신성성까지 부여한다. 비참함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쓰레기 더미 속에서 꽃을 피워낼 수 있는 자라면 진정 성자(聖者)가 아니겠는가, 하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가 라는 물음은 이 소설 앞에서는 무의미하다. 이 새로운 악의 미학 앞에서 아마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고개를 돌릴 것이다. 하지만 장 콕토나 자코메티, 사르트르 같은 이들은 그의 작품에 열광했으며, 특히 사르트르는 그를 성 주네라고 일컬으며 그의 작품과 그를 옹호했다. 장 주네에 대한 사르트르의 그러한 열광은 당시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피력하는데 그가 적합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가 말한 실존이라는 것의 실체를 장 주네가 얼마간 구현했기 때문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이 <도둑 일기>라는 소설에서 장 주네가 다소 장황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낸 것과는 달리, 그 내용에 있어서는 즉흥적이고, 비참하며, 쾌락적인 자신의 정체성을 무척이나 진지하게 풀어내었다는 점을 지적해야 할 것이다. 그 진지함 속에 어떤 진실이 놓여있음은 쉽게 부정할 수 없다. 그것이 일반 독자들이 읽기에 조금은 불편한, 장 주네 그 자신만의 진실이라 하더라도.

 

누가 그랬던가. 그것은 내가 읽은 것이 아니라, 내 안의 불안이 읽은 것에 불과하다고. 내 경우, <도둑 일기>는 내가 읽은 것이 아니라 내 안의 허영이 읽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내 안의 어떤 불가해한 허영심과 자아도취가 나를 이 냄새나고 축축한 시궁창같은 소설에서 역시 불가해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만든 것이다. 아무래도 상관없다. 이 소설은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시와 같다. 세상의 모든 비참한 것들에게 바치는 악의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