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독서

김연수, 『세계의 끝 여자친구』, 문학동네, 2009.

시월의숲 2010. 2. 8. 19:29

 

 

 

우선 내가 김연수의 소설들을 오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시인해야 할 것 같다. 예전에 <굳빠이 이상><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나는 유령작가입니다>를 읽고 나는 그의 소설들은 재미없고, 현학 취미로 가득찬, 별 감동없는 소설이라고 생각했었다(물론 몇몇 예외도 있었다). 가슴을 울리는 소설이 아니라 머리로만 쓴 소설들이라고. 한 번 형성된 편견은 특별한 계기가 없는한 오래도록 지속되기 때문에 나에게 있어 김연수란 그런 재미없는 소설만 쓰는 작가로 인식되어 있었던 것이다. , 한 명의 어리숙한 독자가 그리 생각한다고 해서 그가 쓴 소설의 재미와 감동이 사라져버리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동안 내가 얼마나 그의 소설을 오해하고 있었던가 생각하니 스스로 좀 우스운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렇게 새삼 그의 소설이 재미있다고 말하고 있으려니 낯이 좀 뜨거워지기도 하고. 이런 내 심정을 작가도 알았던 것일까? 그의 최근 소설집 <세계의 끝 여자친구>에 실린 작가의 말에서 그는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나는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에 회의적이다. 우리는 대부분 다른 사람들을 오해한다. 네 마음을 내가 알아, 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네가 하는 말의 뜻도 나는 모른다, 라고 말해야만 한다. 내가 희망을 느끼는 건 인간의 이런 한계를 발견할 때다. 우린 노력하지 않는 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세상에 사랑이라는 게 존재한다. 따라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만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노력하는 이 행위 자체가 우리 인생을 살아볼 만한 값어치가 있는 것으로 만든다. 그러므로 쉽게 위로하지 않는 대산에 쉽게 절망하지 않는 것, 그게 핵심이다."(316쪽)

 

노력하지 않는 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말.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만 한다는 말. 그의 말에 의하면 나는 그를 사랑했기 때문에 숱한 편견과 오해 속에서도 다시 그의 책을 찾아서 읽는 노력을 한 것이다. 사랑?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고서야 왜 내가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작가의 다른 소설을 찾아서 읽을 것인가? 어쩌면 세상을 움직이는 것, 아니 이런 거창한 말 말고, 그저 우리들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김연수식으로 말해서 사랑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다면 이 모든 것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번 소설집에 담긴 이야기들도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겪었던 오해와 그 오해를 넘어서기 위한 노력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책의 말미에 실린 신형철의 해설을 빌리자면 세계와 인간에 대한 '성숙한 낙관론'이라고나 할까. 세상이 얼마나 절망적이고, 외롭고, 비루하고, 야비하며, 폭력적인지 아는 자의 긍정. 작가 자신의 말처럼 등장인물들의 삶을 쉽게 위로하지 않는 대신에 쉽게 절망하지 않는 것. 소설을 읽고 난 후 봄볕의 따사로움 같은 아픈 감동이 밀려왔던 이유도 아마 그러한 김연수식의 긍정, 사랑 때문이었을 것이다.

 

책에 실린 모든 소설이 다 저마다의 감동과 아름다움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등장인물들이 지닌 각자의 아픔이 조금씩 치유되고 이해되어가는 그 과정에서 나왔다. 그것을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낸 소설이 아마도 '레이먼드 카버에게' 라는 부제가 붙은 <모두가 복된 새해>라는 작품일 것이다. 이 소설은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을 오마주한 소설이 분명하지만, 그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과 맹인이 주는 감동에 버금가는, 어쩌면 그 이상의 감동을 우리에게 전해준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피아노의 조율을 위해 집에 찾아온 외국인 노동자 사트비르 싱과 그, 그리고 그의 아내. 외국인 노동자를 매개로 주인공은 아내를 이해하게 되고 외국인 노동자 또한 이해하게 되는 과정이 감동적으로 그려져 있다. <케이케이의 이름을 불러봤어>의 외국 작가와 <세계의 끝 여자친구>의 죽은 작가,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의 여성작가, <달로 간 코메디언>에 등장하는 여성 피디와 그녀의 남자친구 등등. 모두가 겹겹히 쌓인 오해의 벽을 부수고자 노력하며, 쉽게 위로하거나 위로받으려 하지 않는 대신 쉽게 절망하지도 않는, 그래서 그 자체로 무척이나 아름답고 감동적인, 그런 이야기들.

 

드닷없이 낯설고 어두운 공간에 던져졌을 때 혹은 갑자기 심장이 얼어붙어 버렸을 때 우리를 다시 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동안 자신이 그 전까지의 삶과 그 삶을 지탱해 왔던 한 세계를 오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며, 그리하여 다시 이해하려고 노력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또한 깨닫는 데 있다. 그것은 김연수가 말한 것처럼 대상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듯 오해와 이해, 사랑과 노력의 과정을 여실히 보여주는 이번 소설집은 하나하나가 캄캄한 하늘에 펼쳐진 별처럼 빛난다. 그리고 그 별들은 하나의 그림으로 연결되어 있어, 하나의 별이 신호를 보내면 다른 별이 신호를 받는다. 그리하여 수천 수만의 별들이 비로소 암흑을 배경으로 한꺼번에 빛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왜 그동안 그의 소설을 오해했던가? 어쩌면 그것이 내 한계였을지 모르나, 그러한 한계를 발견했을 때 희망을 느낀다는 작가의 말처럼, 나는 내 한계를 발견함으써 희망을 느끼고 다시 이해하려는 노력을 할 것이다. 쉽게 위로받지 않는 대신 쉽게 절망하지 않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