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독서

조너선 사프란 포어,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민음사.

시월의숲 2010. 5. 28. 21:09

 

 

 

상실감과 슬픔을 이겨내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하는가. 누군가는 그저 깊은 한숨으로 감정을 누르고 눌러서 시간을 견딜 것이고, 누군가는 잊기위해 노래를 부를 것이며, 어떤 이는 시야가 뿌옇게 흐려질 때까지 달리고 또 달릴 것이며, 또 다른 이는 머릿속에 가득한 생각과 가슴 깊이 차오르는 주체할 수 없는 감정들을 글로 표현할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 속 주인공인 오스카는 끊임없이 발명을 하며 템버린을 치고 열쇠의 비밀을 풀기 위해(아버지를 더이상 그리워하지 않기 위해) 여러 사람들을 찾아다닌다. 그런 그의 행동의 원동력은 바로 상상력이다. 그는 현실에서 실제로 이루어지기에는 불가능한 발명품들을 자신의 머릿속 상상력으로 만들어 내어 사람들에게 '말(언어)'로 선사한다. 또한 그는 끊임없이 주위 사람들에게 묻고 또 묻는다. 왜 네가 있는 곳에 나는 없는가, 왜 아버지의 관은 비어있는가, 왜 어머니는 아버지를 잊고 잘 살고 있는 것만 같은가, 아버지가 남긴 그 열쇠의 비밀은 무엇인가 등등.

 

이 소설은 오스카라는 아홉 살 먹은 사내아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일종의 성장소설이자 상실과 슬픔 그리고 치유에 관한 소설이다. 오스카는 9.11 테러로 아버지를 잃은 후, 아버지가 남긴 물건들을 챙기던 중 푸른색 유리병에 든 열쇠를 발견한다. 그 유리병 안에는 열쇠 말고도 블랙이라고 씌여진 쪽지가 같이 들어있었는데, 오스카는 그것이 사람의 이름이라는 것을 눈치채고 뉴욕에 거주하는 블랙이라는 성을 가진 사람들을 하나씩 찾아다니기로 결심한다. 도대체 아버지가 남긴 이 열쇠는 무엇을 여는 것이며, 이 열쇠에 맞는 자물쇠는 과연 어디에 있으며, 블랙이라는 사람과 아버지는 대체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일까. 오스카가 궁금해하는 만큼 나도 이 소설을 읽는 내내 그것이 궁금했다. 결국 열쇠는 블랙이라는 성을 가진 이의 유품으로, 오스카의 아버지는 열쇠를 산 것이 아니라 그 열쇠가 든 푸른색 유리병을 산 것으로 밝혀지지만, 중요한 것은 그러한 사실이 아니다. 열쇠의 주인으로부터 아버지에 관한 짧은 기억의 한 조각이나마 듣는 것, 그것이 오스카에겐 중요했다. 설사 그것이 아버지의 죽음에 있어 그리 중요한 사실이 아니고 블랙이라는 사람과도 특별한 인연이 아니었다 해도.

 

작가는 오스카를 통해 9.11 테러라는 역사적 사실을 상기시키며, 오스카의 할아버지, 할머니를 통해서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슬픈 역사를 상기시킨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정치적으로 비판하려 들지는 않는다. 그러한 사건들은 모두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이었지만 어쨌든 일어났고, 그래서 왜 그런 일이 일어나야만 했는가를 말하기보다 그 일이 일어난 후 남겨진 자들이 감내해야만 하는 상실감과 슬픔을 말하는 것에 더 관심이 있는 것이다. 과연 이 소설을 관통하고 있는 정서는 깊은 상실감과 거기서 나오는 깊은 슬픔이다. 하지만 작가는 그것에 관해서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치유될 수 있는지도 함께 보여준다. 앞에서 말했던 오스카 특유의 상상력과 끊임없는 물음과 그에 대한 대답으로. 그래서 오스카의 상실감과 슬픔, 그리움은 오스카만의 것이 아니게 되고, 실제로 9.11 테러를 당한 사망자들의 유가족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도 아니게 된다. 그것은 결국 이 소설을 읽는 모든 사람들의 상실감이요, 슬픔이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모두 과거에 혹은 미래에, 어떤 방식으로든 곁에 있던 누군가를 떠나보냈거나, 떠나보내야만 하는 운명을 타고난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오스카는 단지 9.11 이라는 특수하고도 역사적인 사건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아버지를 떠나보내야 했다는 점이 다르다면 다르겠지만. 하지만 그 '어쩔 수 없음'은 비단 오스카 혼자만의 것은 아니리라.

 

소설을 읽는내내 슬픔이 호수처럼 잔잔이 일렁이며 밀려왔다. 손을 뻗으면 거기 슬픔이 만져질 것 같았다. 엄청나게 산만하고, 두서없고, 제 멋대로인 것처럼 보이는 소설이었지만 결국 그게 다 지독한 슬픔을 견뎌내기 위한 역설적인 몸부림이었다고 생각하니 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우리는 그렇게 저마다 슬픔을 한가득 지니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 슬픔을 견디기 위해 우리는 템버린을 칠 것이고, 끊임없이 상상의 나래를 펼칠 것이며, 죽을 힘을 다해 대화를 할 것이다. 그렇게 한바탕 앓고 나야 우리는 또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참 잔인한 삶이라 아니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만 하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축복이 있기를. 우리는 모두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세상에 살고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