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4시의희망

이병훈 - roam

시월의숲 2014. 3. 10.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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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다음사이트에 플래닛이라는 게 있었다(전에도 몇 번 이야기 한 것 같다). 한창 싸이월드가 인기 있을 때, 그것과 비슷하게 만들려고 한 것 같은데, 그리 오래가지 못하고 사라져버렸다. 암튼 그때 나는 처음으로 책이나 영화를 보고 난 뒤 감상을 올리고, 배경음악을 구매해서 플래닛에 틀어놓고는 했다. 별들이 사라지듯, 플래닛이 사라진 후, 반강제적으로 블로그로 이사를 하고 나서는 배경음악에 소홀해졌다. 누군가의 홈페이지나 블로그에 접속을 했을 때,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강제로 들어야만 하는 음악이란, 몇몇 이들에겐 어쩌면 폭력적으로 다가올 수도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물론 처음 듣는 그 음악이 마음에 들 수도 있고, 평소 내가 좋아하던 음악이 나온다면 반가울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음악을 꺼야만 하는 수고로움은 예상 외의 압박으로 다가온다. 그게 뭐 대수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랬다.

 

또 한가지는, 블로그에 음악이 나올 경우, 글에 집중을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 아, 이건 물론 나의 경우이다. 어떤 이(대부분일지도 모른다)는 음악과는 상관없이 컴퓨터 화면으로 보는 빼곡한 글자들에 집중을 잘 할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못하다. 다섯 단락 이상 넘어가는 긴 글은, 내 흥미를 자극하지 않는 이상 계속 집중해서 보기 힘들다. 정말 내가 집중을 해서 읽어야만 하는 글이 있다면 나는 그것을 인쇄 한 후, 조용한 방안에서 혼자 읽을 것이다. 물론 그렇게까지 노력을 기울여 읽을만한 글은 좀처럼 없지만 말이다. 아, 오해하지 말길 바란다. 이건 내가 올린 글에도 해당되는 이야기니까. 설사 주의를 기울여 정독을 해야하는 글이 있다고 하더라도, 눈의 피로 때문에 장시간 모니터를 들여다보는 일은 내게 고역이다.

 

음악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이야기가 옆으로 새어 버렸다. 예전 플래닛에 살(?) 때, 내 기준으로는 꽤 많은 음악을 구입해서 들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그게 플래닛과 블로그의 차이인지도 모르겠다. 블로그는 좀 더 글쓰기에 치중된 느낌이랄까. 물론 어떤 이에게는 사진을 올리기 좋은 곳이겠지만. 어찌 되었든, 앞으로는 그때 사놓고 듣지 않던 음악들을 하나씩 들어봐야겠다. 그때 내가 왜 그 음악에 조금이나마 마음이 흔들렸었는지 생각해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물론 이것도 마음이 내켜야 하겠지만.

 

 

*

이송희일 감독의 영화 <후회하지 않아>의 ost에 삽입된 음악이다. 영상이랑 같이 올리고 싶었지만, 유투브엔 마땅한게 없었다(그렇다고 내가 만들어 올릴 재주는 없고ㅠㅠ). 아름답다고 해야할까, 어딘가 불안한 듯, 서성거리는 듯, 두려운 듯, 슬픔과 아픔의 정서가 피아노 선율 가득 배여있다. 그리고 마지막엔 쾅하고 부서질 것만 같은 위태로움이 느껴진다. 이 음악을 들으면 이상하게 생각이 많아진다. 영화는 몇 장면을 제외하고는 거의 생각나지 않는데도. 아마도 어떤 비극적인 정서와 감정이 영화의 내용을 상기시키면서 아련히 전해져오기 때문이리라. 음악 때문에라도 나는 이 영화를 다시 한 번 더 봐야 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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