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독서

한강, 『소년이 온다』, 창비, 2014.

시월의숲 2014. 9. 17. 18:27

 

 


간을 이해하는 것이 가능할까. 나는 그것이 늘 의문이었고, 결론적인 깨달음은 늘 부정적이었다. 어쩌면 나는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이해한다는 것에 강박을 가지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완벽히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므로, 이해의 불완전함 혹은 편협함에 늘 민감하게 반응을 했던 것이다. 어설픈 이해는 오해와 다름이 없고, 어설프지 않은 이해란 존재하지 않으므로, 이해라는 말은 오해의 다른 이름일 뿐이라고.

 

하지만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고 난 후 조금은 다른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조금 너그러워졌다고 해야 할까. 그렇다고 해서 소설 한 권을 읽고 누군가를 갑자기 완벽에 가깝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 또한 불가능한 일이므로. 나는 다만 한강이 그려놓은 소설 속 여러 인물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고, 그래서 어쩐지 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그것이 잠깐의 착각이었는지, 아니면 물 밀 듯이 밀려오는 어떤 감정 때문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80년 오월의 광주에 대해서 나는 변변한 책 한 권 읽어보지 못했다. 학창시절 교과서에 나왔던, 짤막한 내용을 읽은 기억밖에는. 나에게 광주는 피상적인 도시이다. 그 당시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 많이 나왔다고는 하지만 지금껏 한 번도 읽은 기억이 없다. 혹은 읽었더라도 잊어버렸다. 그런데 한강이 쓴 80년 광주의 이야기라니. 나는 읽지 않을 수 없었고, 읽는 내내 눈을 뗄 수 없었으며, 읽고 나서는 먹먹한 슬픔에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평소 내가 읽는 속도에 비해 무척이나 빠른 속도로 이 소설을 읽었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내면에 귀 기울이도록 하는 힘, 집중하도록 하는 힘이 이 소설에는 있었다.

 

<소년이 온다>는 고발과 증언, 분노의 서사가 아니라, 인간의 내면, 영혼, 존엄에 관한 서사였다. 온 몸을 던져 부서짐으로써 영혼이 있음을 증명한, 썩고, 피와 고름이 흐르는 살덩어리를 가진 인간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비로소 존엄할 수 있는 것이 또한 인간임을 보여주는 소설이었다. 평론가 신형철은 다소 흥분된 목소리로 책의 뒤편에 이렇게 썼다. ‘이 소설은 그날 파괴된 영혼들이 못다 한 말들을 대신 전하고, 그 속에서 한 사람이 자기파괴를 각오할 때만 도달할 수 있는 인간 존엄의 위대한 증거를 찾아낸다고. 또 마지막에 이런 말도 덧붙였다. ‘이것은 한강을 뛰어넘은 한강의 소설이다라고.

 

한강을 뛰어넘은 한강의 소설이라고 그는 말했지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역시 한강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한강의 소설이라고. 이 소설이 작가의 역량을 뛰어넘는 소설인지는 나는 판단하지 못한다. 하지만 오월의 광주가 한강의 세계 안으로 들어오면서 비로소 인간의 내면과 만나게 되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이야기의 중심을 이루는 동호뿐만 아니라, 그를 둘러싼 여러 인물들의 내면을, 그들이 겪었을 불합리와 고통과 죽음을 비로소 들여다보게 되었다고. 그래서 더 깊어질 수 있었다고.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있고, 쉬이 잊히는 기억이 있다. 하지만 시간 앞에서는 모두 희미해져 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기억이 있다. 우리에겐 오월의 광주가 그러할 것이다. 한강은 우리가 점차 잊고 살아가던 뼈아픈 기억을 지금, 현재 우리 앞에 가져다 놓았다. 이것은 비록 과거의 일이었지만, 결코 과거에만 속한 것은 아니었다. 지금도 인간의 존엄을 짓밟는 일들은 도처에서 일어나며, 소설 속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부서지고 깨지면서 비로소 인간이 영혼을 가진 존재임을 증명하는 인간 또한 존재하고 있으니까.

 

앞서 이해의 불가능성, 불완전함에 대해서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다시 바꿔야 할 듯하다. 감히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착각의 말이 아니라 일단 기억하는 일이 먼저가 아닐까, 라는 문장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기 싫으며, 이해라는 말조차 어울리지 않는 것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고, 이해하고 싶어지며, 이해해야만 한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 또한 사람이라는 사실은 얼마나 모순적인가. 그러한 모순을 직시하게 만드는 힘이 바로 한강의 소설에는 있다. 슬프고 고통스럽지만 한 곳을 뚫어지게 응시하게 만드는 힘 말이다. 그 집요한 응시가 바로 인간의 영혼에 맞닿아 있음을 어렴풋이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