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독서

프란츠 카프카, 『꿈』, 워크룸, 2014.

시월의숲 2014. 6. 28. 23:16

 

"문학적으로 보자면 내 생은 지극히 단순하다. 꿈과 같은 내면의 삶을 묘사하는 일이 운명이자 의미이고, 나머지는 전부 주변적인 사건이 되었다. 삶은 무서울 정도로 위축되었고, 점점 더 계속해서 위축되어간다. 그 어떤 일에서도 이처럼 큰 만족감을 얻지 못한다."(29)

 

꿈을 기록할 수 있을까. 꿈을 꿀 때는 그것이 꿈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만져질듯 생생한 느낌에 사로잡히지만, 깨고 나면 꿈의 잔해, 앙금처럼 남겨진 감정의 찌꺼기만이 남아 있는데. 원인과 결과도 없고, 줄거리도 없으며 언제나 어떤 상황 속에 던져진 채 쫓기는 장면만이 가까스로 생각날 뿐인데. 왜 쫓기는지, 무엇 때문에 그리 급박한 상황에 내몰려야 하는지, 왜 불안함과 슬픔만이 느껴지는지 알지 못한 채. 알 수 없기 때문에, 꿈을 꾸는 동안 느꼈던 격렬한 감정이 꿈을 깨고 나면 마치 신기루처럼, 혹은 거짓말처럼 느껴진다. 그것은 꿈이었을까? 꿈이 그렇게 손에 잡힐 듯 생생하고, 꿈 속에서 느꼈던 감정으로 인해 그렇게 가슴이 오래도록 뛸 수 있는 것이었던가? 전혀 생각나지 않는 꿈 때문에? 그런 꿈을 기술하는 것이 가능한가? 카프카는 가능했다. 그것은 카프카이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프란츠 카프카의 <>을 읽었다. 소설도 아니고, 일기도 아닌, 말하자면 카프카의 소설 혹은 일기, 편지 등, 그가 쓴 모든 글에서 꿈에 관한 부분만을 발췌해놓은 독특한 책이다. 배수아는 자신의 단편 소설에서 카프카의 산문 중 한 대목을 차용한 적이 있다. 나는 이전에 그것을 읽었으나, 당연하게도 그 대목이 카프카의 산문의 한 대목인 줄 알지 못했으며, 그러한 부분이 있었는지도 기억해내지 못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나서야 나는 어렴풋이 그것을 기억해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올빼미의 없음>이란 소설집에 들어있는 단편 중 하나였으리라. 배수아가 카프카의 산문을 차용했다는 사실만으로 나에게는 카프카가 무척 특별하게 다가왔음을 고백해야겠다. <>을 읽기 이전의 카프카는 내게 그리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았으므로. 이 책은 프란츠 카프카라는 소설가의 중요 테마인 ''에 관한 모든 것을 실어놓은 독특하고 매력적인 책이기도 하지만, 프란츠 카프카라는 이름을 저 깊고 피상적인 상투성에서 건저내어 새롭게 조망하게 된 책이기도 하다. 내가 카프카의 <변신>을 읽을 때만 해도, 나는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의 변신을 꿈과 연결시키지 못했다. 물론 그것을 반드시 꿈과 연결시켜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카프카에게 있어 꿈이란 그의 작품세계에서 없어서는 안 될 요소이며, 꿈을 그대로 재현 혹은 설명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문학적으로 가공하고, 때로는 현실을 꿈으로 만들어버리는 경지까지 이르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지독한 불면에 시달렸으며, 그리하여 꿈과 투쟁할 수밖에 없었던 카프카이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는 말한다. "잠을 잘 수가 없다. 잠을 자는 것이 아니라 꿈을 꿀 뿐이다."라고. 책의 뒷편에는 앞 쪽에 실어놓은 꿈과 관련된 텍스트에 대한 부연 설명이 실려 있는데, 어쩐지 이 부분은 불필요하게 친절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일기의 한 대목인 그 부분은, 그 당시 카프카가 어딜 다녀왔고, 무엇을 읽었으며, 누굴 만났고, 그래서 어딘가, 무엇을, 혹은 누군가에게서 깊은 인상을 받았으므로 그것이 그날의 일기 속에 그대로 쓰여져 있거나, 때로는 가공되었고, 어느 일기에 쓰인 것이 어느 소설에 변용되어 쓰여졌다는 식이다. 이는 앞부분의 꿈에 대한 텍스트를 이해하고, 어떤 상황이나 사실이 어떤 식으로 형상화 되었는지 알 수 있어서 꽤 도움이 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원본 텍스트의 매력을 떨어뜨리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했다. 꿈은 그것이 꿈으로서 존재할 때, 군데군데 비어있고, 완성된 그림이 무엇인지 알 수 없으며, 아무런 맥락을 유추할 수 없을 때 특유의 몽환적인 매력을 풍기는 법인데, 뒷부분의 설명은 마치 해몽을 해놓은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보다 내겐 옮긴이의 글이 더 인상적이었다.

 

제일 마지막에 실려있는 옮긴이의 글은 그 자체로 한 편의 꿈에 관한 소설이다. 내가 본 역자의 후기 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다.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비트겐슈타인의 조카>의 역자 후기에서 배수아는 그 소설이 '베른하르트 나름의, 참으로 베른하르트다운 레퀴엠'이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을 살짝 바꿔서 프란츠 카프카의 <>에 실린 배수아의 후기가 '배수아 나름의, 참으로 배수아다운 헌사'라고 말하고 싶다. 배수아가 아니었다면 결코 그처럼 쓰여질 수 없었을 것이므로. 이 책으로 인해 프란츠 카프카라는 이름이 내게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는데, 이또한 배수아가 아니었다면 결코 알 수 없었고, 알았다 하더라도 어쩌면 읽지 않았을 것이기에 그러하다. 어쩌면 이것은 프란츠 카프카의 책을 읽었지만, 프란츠 카프카가 아니라 배수아에게 바치는 '내 나름의, 참으로 나다운 독후감'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