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독서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현대문학, 2016.

시월의숲 2016. 7. 24. 13:46




책을 읽고 글을 쓴지가 꽤 오랜만인 것 같다. 가끔씩 찾아가는 어떤이의 블로그에는 거의 이 삼 일에 한 번씩 감상문이 올라오곤 하던데, 그에 비해 나는 잊을만하면 한 번씩 글을 올리니, 애초에 내가 생각했던 독후감 위주의 블로그에서 많이 벗어나 버렸다. 하지만 누가 강요하는 것도 아니고,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것도 아니니, 느긋하게 마음이 가는대로 이런저런 글을 쓰면서 마음을 정리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내가 가끔씩 찾아가는 그 블로그의 주인은 시, 소설, 인문, 철학, 역사 등 분야를 망라하고 다양하게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는데, 분야의 다양성도 다양성이지만, 우선 책을 읽고 리뷰가 올라오는 시기가 굉장히 짧다는데 놀란다. 나 같으면 한 달이나 걸려도 다 읽을까말까 한 책들을 그는 단 이 삼일 만에 다 읽고 리뷰를 올린다. 어떻게 보면 하루종일 책만 읽고 있는 것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그의 리뷰를 읽을 때면, 대체적으로 긴 분량 때문에 초반 몇 단락을 읽다가 포기하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내가 이미 읽었던 책이나, 평소 관심 있었던 책에 대한 리뷰가 올라오면 호흡을 가다듬고 끝까지 읽는다. 그의 리뷰의 특징은 전반적으로 유머러스하다는 것인데, 저명한 작가든, 신인 작가든 가리지 않고 가차없이 공격할 때 그 유머는 배가된다. 하지만 자칫 장난스러워보이는 문체 때문에 객관성을 잃고 혼자만의 생각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게 단점이라면 단점이랄까. 하긴, 주관적인 느낌을 표현하는 감상문에 객관성을 들이민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우스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누군가 수긍하고 공감할 수 있으려면 일단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을 객관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근데 이게 말이 되는 건가?). 어쨌든 그는 꾸준히(정말 꾸준히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다!), 마라톤 선수처럼, 마치 하루키처럼(문체의 유사성이 아니라 꾸준히 글을 쓴다는 점에서) 글을 써낸다. 그 블로그에 올라온,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리뷰를 읽고나서, 얼굴도 모르는 그가 하루키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것도 다 글을 써내는 그 부지런함(마치 숙련된 기술자처럼)이 서로 닮았다고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 대해서 그는 혹평을 했는데, 하루키가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쉽게 해내지 못할 일들을 아무렇지 않게 해내면서, 그것이 또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닌 것처럼 말하는 그 태도 때문이었다.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혹은 어떤 면에서는 잘난 채 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도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그는 1978년 도쿄 신주쿠 진구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개막전에서 야쿠르트 스왈로스의 1번 타자 데이브 힐턴이 2루타를 날린 순간 불현듯 자신이 소설을 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그날 밤부터 가게 주방 식탁에 앉아 소설을 쓰기 시작했으며, 그렇게 완성한 그의 최초의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신인문학상을 받아 소설가가 되었는데, 중요한 건 그가 이전에는 소설 수업을 받은 적도, 습작기를 거친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는 생애 처음으로 소설을 썼고, 그 소설로 상을 받았으며, 그것을 계기로 등단을 해서 지금까지 전업 소설가가 되었다. 이건 수없이 많은 작가지망생들이 좌절을 느낄만한 이야기가 아닌가! 그것은 그야말로 자신이 천재임을 그 자신도 모르는채로 아무렇지 않게 고백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자신을 둘러싼 여러 오해에 대해서 상당히 언짢은 듯 말하면서도, '뭐 그렇게 생각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과 같은 말로 결론 짓는 화법이 누군가에게는 자칫 위선적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나 같은 경우에는 오히려 하루키처럼, '뭐, 그런 사람도 있지', 하면서 아무런 거부감 없이 재밌게 읽었지만 말이다. 어떻게 보면 그게 하루키의 매력이 아닌가? 보통 사람들이 상당히 어려워 하는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해내는 것(처럼 보이는 것). 어려운 말을 쉽게 풀어내는 것. 자기란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맛있는 굴튀김 먹는 법에 비유하는 것 등등.


하루키의 글을 읽고 있으면 모든 것이 쉽게 느껴진다. 모든 문제들이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생각된다. 그도 그럴 것이 '어떻게든' 살아진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처를 입었으면 입은채로, 뒤틀렸으면 뒤틀린대로. 그건 무라카미 하루키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고, 그래서 자신이 어떤 면에서는 대단한 사람인데, 정말 그런 거냐고 그에게 묻는다면, '나는 원래 그런 재능은 타고난 모양이니까 남들보다 쉽게 해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나름 노력했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뭐 어쩔 수 없는 일이죠' 라고 말할 것만 같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도 마찬가지다. 이 책은 다른 에세이와는 달리 자신의 '글쓰기'에 관해서 본격적으로 말을 꺼내고 있는데, 소설가란 어떤 사람인가, 나는 어떻게 소설가가 되었는가, 문학상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장편소설을 어떻게 쓰는가, 학교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누구를 위해서 쓰는가 등에 관한 이야기를 나름 진지하게 이야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갈등과 문제의식, 절실함과 치열함 같은 것은 하루키 특유의 유머러스함과 쿨(?)함으로 인해 드러나지 않거나, 드러나더라도 상당히 희석되어 있다. 이건 역시 하루키의 글이군, 이라고 누구나 느낄만한 것이다. 하지만 그가 어떤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서 회피하려 한다거나, 모른 척하려 하지 않고 자기 나름의 생각을 표현하려 했다는 점에서 다른 에세이와 또다른 차별점을 가진다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저런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나는 하루키의 엄청난 독서량과 음악에 관한 매니아적 취향, 그로인해 풍겨져나오는 박학다식하면서도 유머러스한 문체를 좋아한다. 그리고 삼십오년 동안 꾸준히 글을 써낼 수 있는 재능과 지구력, 마르지 않는 상상력은 정말 대단하다고밖에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란 정확하게 그를 지칭하는 말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