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독서

페터 한트케,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 민음사, 2009.

시월의숲 2020. 3. 29. 17:07

페터 한트케의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은 매우 독특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비교적 짧은 소설이다. 책 뒷편에 실린 줄거리를 짧게 요약하자면 이렇다. 요제프 블로흐라는 주인공은 여느 때와 다름이 없이 건축 공사장으로 출근을 하나, 자신을 흘끗 쳐다보는 현장감독의 눈빛을 해고의 통지로 짐작하고 아무런 말도 없이 공사장을 떠나 시내를 배회한다. 시내에서 아무런 의미없이 돌아다니는 그는 극장 매표소 여직원과 하룻밤을 보낸 다음 날 아침, 그 여직원이 일하러 가지 않느냐는 말 한 마디에 그녀를 목졸라 살해한 후 국경마을로 달아난다. 살해의 동기는 다르지만, 얼핏 카뮈의 이방인 속 뫼르소가 떠올랐다.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너무나 어이없는 살해였다는 것. 살해하고 난 후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 하지만 이 소설에서 그의 살해는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다. 그가 처한 모든 상황들, 그가 한 모든 행동들, 그가 느끼는 모든 감각들은 어딘가 묘하게 현실과 괴리되어 있고, 그 밑바탕에는 다름아닌 '불안'이 흐르고 있다는 것. 그것이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원동력이다. 

 

작가는 소설 속 살해라는 사건에 대해서 어떤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지는 않는다. 그것은 요제프 블로흐라는 사람, 더 나아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인간들 사이에 팽배해 있는 소외, 단절, 소통불능, 오해 등을 드러내기 위한 일련의 상징적인 사건처럼 보인다. 그가 처음 현장감독의 눈빛만으로 그것이 해고의 통지였음을 오해하는 도입부부터 소설은 요제프 블로흐라는 한 인간의 소통 불가능성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가 길이나 카페, 여관 등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의 대화는 미묘하게 엇나가고, 서로의 생각은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불필요한 오해와 싸움을 불러일으킨다. 어쩌면 작가는 전직 골키퍼였던 블로흐라는 인물을 내세워 축구 경기에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지만, 그 스스로는 극도의 불안에 시달려야만 하는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을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축구경기에서 골키퍼는 미묘하게 소외되어 있는 존재이고, 공격수가 골키퍼를 향해 공을 차 넣는 순간에만 골키퍼를 주목하지 않는가. 하지만 그 순간에도 골키퍼가 느끼는 불안감에 대해서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

 

나도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실제 골키퍼를 했던 경험이 아니라, 친구들, 가족들 혹은 직장동료들과의 대화에서 이상하게 멀어지는 느낌, 단절되는 느낌을 받았던 기억 말이다. 우리들은 서로 대화라는 것을 하고 있었지만, 그 누구도 상대의 말을 진정으로 들어주지 않았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이야기만 했고, 그래서 그것이 결국엔 대화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어떤 것이 되고 말았지만, 그 대화의 불능성을 알고 슬픔을 느끼는 사람은 나 외는 없는 것 같았다. 그 사실이 나를 더욱 깊은 슬픔으로 빠뜨렸다. 그것은 누구의 잘못인가? 누구를 탓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결국 아무의 잘못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어쩌면 내가 종종 느끼는 그런 감정들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으면서 앞서 내가 느꼈던 슬픔은 느껴지지 않았다. 작가는 시종일관 무덤덤하게, 그래서 더욱 차갑게 느껴지는 어조로 블로흐의 내면과 그를 둘러싼 사람들에 대해서 서술해나간다. 그것이 더 섬뜩하게 다가왔다. 

 

작가는 결국 이 소설에서 마지막 두 페이지를 쓰기 위해 요제프 블로흐의 극단적인 소통 불가능성을 보여준 것이 아닐까? 그러니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의 '심정' 말이다.(혹은 그들의 '상황'이라고 해야할까?) 하지만 그것은 요제프 블로흐만의 불안은 결코 아닐 것이다. 소설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이 난다.

 

패널티킥이 선언되었다. 관중들은 골문 뒤로 달려갔다.

"골키퍼는 저쪽 선수가 어느 쪽으로 찰 것인지 숙고하지요." 하고 블로흐가 말했다. "그가 키커를 잘 안다면 어느 방향을 택할 것인지 짐작할 수 있죠. 그러나 패널티킥을 차는 선수도 골키퍼의 생각을 계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골키퍼는, 오늘은 다른 방향으로 고공이 오리라고 다시 생각합니다. 그러나 키커도 골키퍼와 똑같이 생각을 해서 원래 방향대로 차야겠다고 마음을 바꿔 먹겠죠? 이어 계속해서, 또 계속해서……."

블로흐는 모든 선수들이 차차 패널티에어리어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았다. 패널티킥을 찰 선수는 슛 지점에 공을 갖다 놓았다. 그런 다음 그도 뒷걸음질로 패널티에어리어 밖으로 나갔다. 

"공을 차기 위해 키커가 달려 나오면, 골키퍼는 무의식적으로 슈팅도 되기 전에 이미 키커가 공을 찰 방향으로 몸을 움직이게 됩니다. 그러면 키커는 침착하게 다른 방향으로 공을 차게 됩니다." 하고 블로흐가 말했다. "골키퍼에게는 한 줄기 지푸라기로 문을 막으려는 것과 똑같아요."

키커가 맹렬히 달려왔다. 환한 노란색 스웨터를 입은 골키퍼는 꼼짝도 않고 서 있었다. 패널티 키커는 그의 두 손을 향해 공을 찼다.(12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