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간다

뮬란

시월의숲 2020. 10. 10. 21:42

 

오랜만에 영화를 보았다. 물론 영화관에 가서 본 것은 아니다. 마지막으로 극장에서 본 영화가 <작은 아씨들>이었는데, 올해 초에 본 것임에도 불구하고 무척 오래 전에 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집에서도 최근에 개봉한 영화들을 볼 수 있으니 굳이 갈 마음도 들지 않는다. 물론 극장에서 보는 것과 집에서 보는 것은 다르겠지만 말이다.

 

<뮬란>의 경우, 처음에는 극장에서 보고 싶었으나, 집에서 영화를 보고 난 후, 극장에 안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봉 전 많은 구설에 올랐던 영화이기도 하고, 개봉하고 나서도 그리 평이 좋지 않았기에, 큰 기대를 가지고 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많이 실망스러웠다. 정말 오래 전에 보았던,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애니메이션 <뮬란>이 훨씬 나았다는 생각이 들만큼. 그 영화에는 노래가 있었고, 흥겨움이 있었고, 무엇보다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어제 본 <뮬란>은 음악도, 흥겨움도, 고뇌도 없었고, 무엇보다 재미가 없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패착은 아무래도 뮤지컬 영화의 최대 장점인 노래를 고스란히 드러냈다는데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영화를 만드는데 원작을 무조건 따라할 이유는 없다. 애니메이션이 원작이라고 해도 원작 그대로 실사화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원작의 최대 장점이자 가장 큰 매력이었던 인상적인 노래들을 드러낸 자리에, 오히려 더 부각되어야 할 서사와 갈등, 드라마가 더욱 얄팍해지고 말았으니, 영화가 재미가 없을 수 밖에. 아름다운 풍경과 다채로운 색상의 영상미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감동은 커녕 초등학생 도덕 교과서에 나올 말만 되풀이 하고 있었던 것이다. 

 

예고편을 보고 기대했던 액션신도 실망이었다. 뮬란은 여성을 내세운 전쟁 영웅 서사라고도 할 수 있는데, 가장 기본이 되고 하이라이트가 되어야 할 전쟁 장면은 맥이 탁 풀릴만큼 조금의 긴장감도, 아픔도, 슬픔도, 환희도 느껴지지 않았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고나 할까. 그리고 우리의 주인공 뮬란은 원작에서의 서서히 각성되어가는 캐릭터라기보다 실력을 숨기고 있는 실력자였다는 사실도 영화의 감동을 줄이는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다. 실력은 있으나 사회적으로 억압된 '여성'이라는 자아를 부각시키고 싶었던 모양인데(극 중 공리가 연기했던 '시아니앙'이라는 캐릭터도 그렇고) 그게 드라마틱하게 펼쳐지지는 못했던 것 같다. 한마디로 마음에 와 닿지 않았던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차라리 우리나라에서 드라마로 만들면 더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뮬란이 여성임을 감추고 부대로 들어가 군사 훈련을 받으며 생활하는 모습에서, 전에 보았던 <성균관 스캔들>이 떠오른 것이다. 그렇게 로맨틱 코미디로 가거나 아니면 정색하고 전쟁영화를 만들어도 재밌지 않을까? <뮬란>이라는 영화를 보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이 영화가 얼마나 재미가 없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의 고증은 둘째로 치더라도, 영상과 배우들은 아름다웠으나, 그것만으로 영화를 보기에는 두 시간 정도 되는 영화의 러닝타임이 너무나 길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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