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간다

뉴 뮤턴트

시월의숲 2020. 11. 21.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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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하기까지 무척이나 사연이 많은 영화가 아니었나 싶다. 개봉일이 계속 미뤄지는게 좀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심지어 극장에 걸리지도 못하는게 아닌가 하는 루머도 돌았으니), 개인적으로는 어벤져스 시리즈보다는 엑스맨 시리즈를 더 좋아하는데다, 예고편도 그리 나쁘지 않았기에, 이 영화를 둘러싼 수많은 루머와 개봉 후 들었던 혹평에도 불구하고 내심 이 영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코로나라는 악재에도 불구하고 9월에 개봉했을 때는 반갑기까지 하였는데, 극장에 가서 볼 기회를 놓쳐서 나중에 VOD로 풀리겠거니 생각하며 잊고 있던 차에 올레TV에 이 영화가 올라와 있는 것을 보고 망설임 없이 구매 버튼을 눌렀다.

 

이런걸 시간의 혜택이라고 해야할까? 지금으로서는 이 영화에 대한 기대와 불안감 등의 감정들이 다 지나간 뒤라서, 비교적 무덤덤하게 영화를 볼 수 있었는데, 오히려 그게 이 영화에 대한 일말의 호감을 품게 하는 원인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론 아무런 기대없이 영화를 보는게 좋을 때도 있는 것이다.

 

이 영화의 주제는 간략하게 말해서, 아직 각성하지 못한 뮤턴트들의 성장담(내 안의 공포와 맞서고 끝내 극복하는!)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돌연변이라는 설정 자체가 이미 소외되고 상처받은 자들에 대한 은유인지라 이를 활용한 각성과 성장은 엑스맨 시리즈의 저 밑바닥에 흐르는 공통된 정서라고 할 수 있다. 어린 뮤턴트들이 나오는 이번 영화는 그런 주제를 더욱 명징하게 드러낼 수 있는 좋은 소재였을 것이다. 또한 이 영화는 앞서 어떤 히어로 무비에서도 도전하지 않았던 공포영화를 표방하고 있으니, 어찌 매력을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하지만 딱 거기까지인거 같다. 그런 영화를 만들려고 했다는 기획이 이 영화의 전부다. 하지만 우리가 보는 것은 제작사의 기획이 아니라 영화라는 시청각적 결과물이 아닌가? 결과물이 형편없으면 아무리 좋은 기획이라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영화는 아무런 서스펜스도, 시청각적 즐거움도, 멋드러진 액션도 보여주지 않는다. 영화를 보는 내내 감정의 동요를 거의 느끼지 못했다. 이렇게 밋밋할 줄이야. 차라리 처음부터 공포영화라고 홍보를 하지 않았다면 좋았을 것이다. 공포영화라고는 했지만 전혀 공포스럽지 않아서 전면 재촬영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공포스러울 거라는 기대는 일찌감치 접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영화의 매력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 기존의 엑스맨 시리즈에서 볼 수 없었던, 틴에이저 뮤턴트들을 보는 것은 좋았다. 그들의 죄책감과 고뇌, 아픔, 절망 같은 것들이 자신의 능력에서 비롯되어진 거라는 설정은 꽤 진지한 메시지를 우리에게 던져준다. 그들이 가진 남다른 능력이 자신들에게는 저주처럼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것을 극복하는 것은 강한 용기와 또다른 계기가 필요한 일이다. 물론 영화는 그러한 것들을 제대로(공포스럽게든 혹은 어떤 식으로든)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한마디로 이 영화를 보는 것은, 뭇 사람들의 혹평과 아쉬움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말한다면 너무 가혹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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