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독서

요조, 『아무튼, 떡볶이』, 위고, 2019.

시월의숲 2021. 1. 23. 16:05

'아무튼'의 사전적 의미는 이렇다. 앞 문장의 내용이나 흐름과 상관없이 화제를 바꾸거나 본래의 화제로 돌아갈  이어 주는 말. 이런 저런 이야기가 많지만, 아무튼 나는 이러이러하다 라고 말하는 것. 아무튼 이라는 말에는 다소의 조용하고 단호한 의지 같은 것이 엿보인다. 어찌되었든 결국 내 생각은 이렇다, 라고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 출판사가 함께 펴내는 '아무튼' 이라는 제목의 에세이 시리즈가 있다는 걸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알게 되었다. 물론 나는 그때 하루키를 검색하고 있었는데, '아무튼, 하루키'라는 책이 나온 걸 알게 되었고, 이 시리즈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이다. 하지만 내가 처음 이 시리즈의 책을 읽게 된 건 '하루키'가 아니라 '떡볶이'였다. '아무튼, 하루키'를 구입하기 전에 '아무튼, 떡볶이'를 먼저 선물 받았기 때문이다. 내가 가입되어 있던 동아리에서 받은 것이었지만, '아무튼' 나는 이 책을 갖게 되었고, 읽게 되었다. 

 

'아무튼' 시리즈에 대해서 책날개에 이렇게 소개되어 있다. ''아무튼'은 나에게 기쁨이자 즐거움이 되는, 생각만 해도 좋은 한 가지를 담은 에세이 시리즈입니다' 라고. 그렇다. 이 책은, 싱어송 라이터이자 제주도에서 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요조의 떡볶이 사랑이 듬뿍 담긴 사랑스러운 책이었다. 자신이 진정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쓴 것을 읽는 일은, 글을 쓴 사람의 진심을 읽는 일이요, 그 사람을 무엇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는 일이 아닐까 생각했다. 

 

한국인의 소울 푸드로서, 쉽고 부담없이 먹을 수 있는 떡볶이에 대해서 쓴 에세이라고 해서 마냥 가볍지만은 않다. 이 책은 떡볶이에 얽힌 자신의 어린 시절과 그때의 사람들, 어머니 아버지들, 지금은 사라졌거나 여전히 운영 중인 식당들, 그 식당의 주인들 등에 대한 애정어린 추억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떡볶이는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지만, 그것에 얽힌 작가의 추억은 쉽게 웃고 넘기기에는 너무도 아련하고, 때론 슬프기도 하며, 쉽사리 잊기 힘든 메시지를 던져주기도 한다. 한 시인은 자신을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라고 했지만, 이 책의 작가를 키운 건 팔할이 떡볶이라고 말하지 못할 것도 없으니까.

 

나는 이 책을 읽고 우선 작가의 위트있는 글솜씨에 놀랐고, 이내 그런 그가 부러웠다. 노래를 짓고 부르는 가수인 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인데, 글도 어쩜 이렇게 잘 쓴단 말인가? 거기에 소설가 장강명과 도서 팟캐스트도 진행하고, 더불어 제주도에서 작지만 예쁜 서점까지 운영한다니! 다재다능하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리라. 반면 나는 어느 것 하나라도 제대로 하는 것이 없으니, 괜히 이 책을 읽고 나 자신의 부족함에 대해서 반추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이 책의 유일하고도 치명적인 단점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이 책의 모든 에피소드가 좋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구절을 마지막으로 소개하면서 독후감이라면 독후감일 이 글을 끝내고자 한다. 커다랗고 아름다운 것이 쑥쑥 뻗어나가는, 김경숙 씨네 작은 가게들 같은 곳이 더 많아지는 세상이 되기를 바라면서.

 

"나는 어느 건물 지하의 오래된 가게에서 떡볶이를 먹으며 어른이 된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들 중 어떤 어른들은 자신들이 먹고 자랐던 음식을 다시 찾아 먹으며 자신을 닮은 자식을 품고 조용히 엄마와 아빠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어떤 어른들은 이미 그 과정을 지나 가족이라는 모습으로 다시 이곳을 찾고 있다. 이 작은 가게에서 얼마나 커다랗고 아름다운 것이 쑥쑥 뻗어나가고 있는지 김경숙 씨는 알고 있을까."(12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