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의 사전적 의미는 이렇다. 앞 문장의 내용이나 흐름과 상관없이 화제를 바꾸거나 본래의 화제로 돌아갈 때 이어 주는 말. 이런 저런 이야기가 많지만, 아무튼 나는 이러이러하다 라고 말하는 것. 아무튼 이라는 말에는 다소의 조용하고 단호한 의지 같은 것이 엿보인다. 어찌되었든 결국 내 생각은 이렇다, 라고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 출판사가 함께 펴내는 '아무튼' 이라는 제목의 에세이 시리즈가 있다는 걸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알게 되었다. 물론 나는 그때 하루키를 검색하고 있었는데, '아무튼, 하루키'라는 책이 나온 걸 알게 되었고, 이 시리즈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이다. 하지만 내가 처음 이 시리즈의 책을 읽게 된 건 '하루키'가 아니라 '떡볶이'였다. '아무튼, 하루키'를 구입하기 전에 '아무튼, 떡볶이'를 먼저 선물 받았기 때문이다. 내가 가입되어 있던 동아리에서 받은 것이었지만, '아무튼' 나는 이 책을 갖게 되었고, 읽게 되었다.
'아무튼' 시리즈에 대해서 책날개에 이렇게 소개되어 있다. ''아무튼'은 나에게 기쁨이자 즐거움이 되는, 생각만 해도 좋은 한 가지를 담은 에세이 시리즈입니다' 라고. 그렇다. 이 책은, 싱어송 라이터이자 제주도에서 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요조의 떡볶이 사랑이 듬뿍 담긴 사랑스러운 책이었다. 자신이 진정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쓴 것을 읽는 일은, 글을 쓴 사람의 진심을 읽는 일이요, 그 사람을 무엇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는 일이 아닐까 생각했다.
한국인의 소울 푸드로서, 쉽고 부담없이 먹을 수 있는 떡볶이에 대해서 쓴 에세이라고 해서 마냥 가볍지만은 않다. 이 책은 떡볶이에 얽힌 자신의 어린 시절과 그때의 사람들, 어머니 아버지들, 지금은 사라졌거나 여전히 운영 중인 식당들, 그 식당의 주인들 등에 대한 애정어린 추억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떡볶이는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지만, 그것에 얽힌 작가의 추억은 쉽게 웃고 넘기기에는 너무도 아련하고, 때론 슬프기도 하며, 쉽사리 잊기 힘든 메시지를 던져주기도 한다. 한 시인은 자신을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라고 했지만, 이 책의 작가를 키운 건 팔할이 떡볶이라고 말하지 못할 것도 없으니까.
나는 이 책을 읽고 우선 작가의 위트있는 글솜씨에 놀랐고, 이내 그런 그가 부러웠다. 노래를 짓고 부르는 가수인 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인데, 글도 어쩜 이렇게 잘 쓴단 말인가? 거기에 소설가 장강명과 도서 팟캐스트도 진행하고, 더불어 제주도에서 작지만 예쁜 서점까지 운영한다니! 다재다능하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리라. 반면 나는 어느 것 하나라도 제대로 하는 것이 없으니, 괜히 이 책을 읽고 나 자신의 부족함에 대해서 반추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이 책의 유일하고도 치명적인 단점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이 책의 모든 에피소드가 좋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구절을 마지막으로 소개하면서 독후감이라면 독후감일 이 글을 끝내고자 한다. 커다랗고 아름다운 것이 쑥쑥 뻗어나가는, 김경숙 씨네 작은 가게들 같은 곳이 더 많아지는 세상이 되기를 바라면서.
"나는 어느 건물 지하의 오래된 가게에서 떡볶이를 먹으며 어른이 된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들 중 어떤 어른들은 자신들이 먹고 자랐던 음식을 다시 찾아 먹으며 자신을 닮은 자식을 품고 조용히 엄마와 아빠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어떤 어른들은 이미 그 과정을 지나 가족이라는 모습으로 다시 이곳을 찾고 있다. 이 작은 가게에서 얼마나 커다랗고 아름다운 것이 쑥쑥 뻗어나가고 있는지 김경숙 씨는 알고 있을까."(1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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