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간다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시월의숲 2021. 3. 5. 23:14

 

보고 있으면 나른해지는, 뱀파이어 영화다. 주인공들의 이름이 무려 아담과 이브다. 수천 년을 살았음직한 뱀파이어들. 이 영화에서 뱀파이어는 하나의 은유로 쓰인다. 인간에 대한 혐오(아담은 인간들을 '좀비'라고 부른다)와 예술에 대한 찬미. 뱀파이어들이 오래 살면 그 두 가지만 남게 되는 것일까? 듀나의 말처럼, '이 영화의 나른한 탐미주의는 빈약한 스토리를 덮기 위한 위장이 아니라 내용 자체'로 보인다. 듀나는 그것을 '자뻑'이라고 표현했는데, 영화 속 주인공들은 그것을 마치 즐기는 듯하다.

 

지루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두 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이 그리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나 또한 그들의 자뻑을 나름 즐긴 탓이리라. 나른하고 우아하며 아름답고 때론 고결하게까지 느껴지는 그들도 결국 본능 앞에서 어쩔 수 없어지는 모습이 씁쓸하면서도 솔직하게 느껴졌다. 이 영화를 보고나면,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술적인 것만이 살아남는 것처럼 느껴진다. 무참한 시간을 통과해 살아남은 음악, 문학, 예술이 없다면 그 긴 시간 뱀파이어들은 피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지루해서 죽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영화의 캐스팅에 대해서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이 영화를 보게 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틸다 스윈튼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톰 히들스턴과 미아 와시코프스카라니. 뱀파이어 영화에 이처럼 어울리는 배우들이 있던가? 특히 어떤 역을 맡던 본인만의 독특한 아우라를 뽐내는 틸다 스윈튼은 이 영화에서도 독보적인 존재감과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오직 틸다 스윈튼만이 살아남는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 사족 - 불멸의 뱀파이어들조차 죽음 충동을 느낀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물론 그것조차 소위 '자뻑'의 제스처처럼 보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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