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과거의 어느 사소한 순간이

시월의숲 2021. 12. 24. 00:23

아무런 특별한 이유도 없이, 과거의 어느 사소한 순간이 생각날 때가 있다. 과거는 주로 미래의 한순간과 강하게 연결되는데, 예를 들자면 죽음이 떠오르면서 동시에 과거의 어느 한 장면이 자연스럽게, 그러나 아주 당연히 그래야만 한다고 주장하듯이 그 모습을 나타내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모습을 드러낸 과거의 사건은 이미 망각되어버린 것이거나 혹은 너무나 사소하고 무의미해서 미래의 어떤 순간과는 전혀 아무런 연결고리를 갖지 않은 채 독립적으로 존재하듯이 보인다. 그 과거의 사건들은 인생의 비밀을 미리 알려주는 암시였을까. 그것이 암시였기 때문에 어느 날 우리의 의식을 비집고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의식이 무심코 갈망한 우연이기 때문에 미래의 어느 날 그것은 암시가 되는 것이리라.(배수아, 단편 <회색時> 중에서)

 

 

*

예를 들자면, 나는 죽음을 떠올리지도 않았는데 '동시에 과거의 어느 한 장면이 자연스럽게, 그러나 아주 당연히 그래야만 한다고 주장하듯이 그 모습을 나타내'었다. 그때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가? 정말이지, 아무런 특별한 이유도 없이, 과거의 어느 사소한 순간이 생각났다. 그것은 오래전 대학교 친구들과 비디오방에 가서 제이크 질렌할 주연의 <도니 다코>란 영화를 보았던 기억이었다. 아마 당시 함께 간 친구들은 굳이 영화를 보고자 하는 열망은 없었던 것 같다. 그 영화는 바로 내가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그 자리에서 즉흥적으로 고른 영화였고, 친구들은 아무런 불평 없이 그 영화를 보자고 했으므로. 그러니까 우리들은 시간을 때울만한 것이 필요했고 마침 비디오방이 보였으며 자연스럽게 그리로 발걸음을 향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우리들은 그 영화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채로 - 그저 토끼의 해골처럼 보이는 기괴한 표지만 보고 공포영화일 거라는 추측만으로 - 영화를 보았다. 보는 내내 우리들은 집중하지 못하고 수차례 몸을 뒤틀었으며, 영화가 도대체 언제 끝나는지 궁금해했다. 나는 그 영화를 고른 것에 대해 친구들에게 무척이나 미안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미안했던 것은 그 영화 자체였다(친구들의 하품과 의아함과 어리둥절함을 받기에는 좀 부당한 영화가 아닌가 생각했으므로). 그래서 나만큼은 열심히 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공포영화라고 하기엔 전혀 무섭지 않았지만 기괴하고 독특한 분위기만큼은 내 흥미를 자극했던 것도 같다. 나는 나름 진지하게 영화를 보았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나와 친구들은 서로 의미를 알듯 모를듯한 웃음을 지으며 그곳을 나왔다. 

 

지금 그 영화의 내용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그것은 '이미 망각되어버린 것이거나 혹은 너무나 사소하고 무의미해서 미래의 어떤 순간과는 전혀 아무런 연결고리를 갖지 않은 채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 돌연한 기억의 떠오름은 배수아가 적은대로, '인생의 비밀을 미리 알려주는 암시였을까?' 그게 아니라면, '그것이 암시였기 때문에 어느 날 우리의 의식을 비집고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의식이 무심코 갈망한 우연이기 때문에 미래의 어느 날 그것은 암시가 되는 것'인가? 내 의식이 그것을 무심코 갈망했기 때문에? 하지만 어떤 암시를 말하는 것일까? 어떤 인생의 비밀을 알려주려 하기에?

 

나는 불쑥 떠오른, 도무지 알 수 없는 기억 때문에 배수아의 책을 뒤져 저 문장을 찾았다. 어디선가 읽었을거라는 강한 확신이 들었던 것이다. 배수아의 말대로 그것이 어떤 암시라면, 그것은 과거에 본 영화 때문이 아니라 배수아의 저 문장 때문이리라. 저 문장으로 인해 과거의 어느 사소한 순간이 결정적 암시로(하지만 결코 알 수 없는 모호함으로) 지금 내게 나타난 것이리라. 이것이 일종의 삶의 신비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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