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가시 돋친 말

시월의숲 2021. 12. 8. 21:30

사람이 다 제각각이라지만, 유독 가시가 돋친 사람이 있다. 그에게 조금만 가까이 다가가려 하면 가시에 찔려 내가 상처 입고 만다. 내가 보인 호의가 그에게는 위선처럼 느껴졌던 것일까? 나는 그저 일상적인 인사 혹은 가벼운 안부 정도의 말을 한 것뿐인데 그조차 그에게는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던 것일까? 나는 그에게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는데. 어쩌다 그와 대화를 하게 되면, 마치 내가 큰 잘못을 저지른 것 같고, 그는 또 이유 없이 화가 나 있는 것만 같으니.

 

내가 무심히 던진 안부 인사가 날카롭고 공격적인 말들로 되돌아온다. 나는 그가 왜 꼭 그렇게 말을 해야 하는지, 왜 꼭 그렇게 반응을 해야 하는지 늘 의아하다. 그가 사람들을 대하는 방식, 사람들에게 건네는 말들, 사람들을 보는 눈빛에 수많은 가시가 돋쳐 있는 것이 내 눈에 보인다. 그는 위악을 떨고 있는가? 아니다, 그것과는 다르다. 그는 왜 늘 화가 나 있는 것만 같은가? 그의 가시 돋친 성정의 원인을 파악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의 속마음이 어떤지도 알 수 없는데 하물며!

 

그런 사람에게는 애써 다가가려 하지 않는 편이 좋을지도 모른다. 그저 적당한 거리에서, 적당한 가면을 쓰고, 적당한 예의를 갖추면 그뿐. 그저 원래부터 그런 사람도 있구나, 하면서. 일부러 다가가 가시에 찔려 상처 입을 필요까지는 없는 것이다. 모든 사람과 잘 지낼 수는 없지 않은가? 어쩌면 그도 그걸 바라고 있는 것이 아닐까? 거추장스럽고 불필요하며 가식적인 대화 따위는 필요치 않아! 그는 온몸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 라고 외쳤던, 성격은 다르지만,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좀머씨 이야기>에 나오는 좀머씨처럼.

'어느푸른저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과거의 어느 사소한 순간이  (0) 2021.12.24
하나의 세계를 건너온 사과잼과 같이  (0) 2021.12.13
문자가 왔다  (0) 2021.12.06
세상에서 가장 절망적인 감옥  (0) 2021.12.01
기억할만한 지나침  (0) 2021.11.17